문학구장에 낯익은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소속이 달랐다. SK의 흰색 유니폼 대신 NC의 새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호준(37)과 모창민(28)의 그 주인공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이만수 SK 감독은 연신 입맛을 다셨다.
이호준과 모창민은 지난해까지 SK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차례로 NC를 향했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이호준은 SK 대신 NC를 택했다. 모창민은 보호선수 20인 외 특별지명에서 NC의 선택을 받았다. 두 선수를 올해 중요전력으로 생각했던 SK로서는 힘이 빠지는 일이었다.
두 선수는 지난 주말 열린 시범경기를 통해 익숙한 문학구장에 돌아왔다. 23일 경기 전 이만수 감독에게 인사를 하러 1루 덕아웃을 찾은 이호준은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소감을 대신했다. 이호준과 손을 맞잡은 이 감독은 “네가 없는 바람에 내가 3달 정도를 고생했다”라고 타박을 줬다. 4번 타자 문제 때문이었다.

지난해 이호준은 팀의 4번 자리에서 자기 몫을 충실히 했다. 그랬던 이호준이 팀을 떠났기에 SK는 새 4번 타자를 찾아야 했다.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안치용 박정권 한동민 조성우 김경근 등 수많은 4번 후보들이 리허설을 치렀으나 죄다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결국 팀의 붙박이 3번이었던 최정을 4번으로 돌리는 고육지책까지 써야 했다. 이 감독의 말을 들은 이호준은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모창민에 대해서는 더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감독은 수비 훈련을 하는 모창민을 보면서 “우리 팀 1루에 있어야 할 선수인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 감독은 “1루와 3루는 물론 외야까지 볼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기대가 컸다”라고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감독은 24일 경기를 앞두고는 특별한 일화도 공개했다. 이 감독은 지난해 모창민의 NC행 당시 플로리다에서 마무리훈련을 지휘하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했다는 것이 이 감독의 회상이다. 이 감독은 “요즘 말로 ‘멘붕’이었다. 훈련장에서 95번 고속도로를 타고 5시간을 멍하게 달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변이 보이더라”라고 떠올렸다. 당시의 충격과 상실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 선수가 주말 열린 시범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였기에 아쉬움은 더 커졌다. 24일 경기에서는 팀의 2득점을 합작하기도 했다. 선두타자로 나선 이호준은 안타로 출루했고 이어 타석에 들어선 모창민은 SK 외국인 투수 조조 레이예스를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포를 작렬했다. 홈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두 선수의 모습은 SK가 바라는 장면이었지만 입고 있는 유니폼은 SK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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