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TV쇼와 영화, 그리고 명배우들의 짜릿한 만남이 이뤄졌다.
강우석 감독의 19번째 영화 '전설의 주먹'이 27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베일을 벗었다. 동명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갖고 있는 리얼리티(오디션) TV프로그램을 영화란 장르와 접목시킨 작품이다. 웹툰이 성인용이라면 영화는 보다 가족물에 가깝다.
영화는 학창시절 각 지역을 주름 잡던 전설의 파이터들이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쇼 '전설의 주먹'을 통해 우승상금 2억원을 두고 최고를 겨룬다는 내용을 그린다. '학교짱으로 불리던 그들은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란 궁금증에서 시작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전설의 주먹'은 종종 있어 온 리얼리티쇼를 다룬 영화들처럼(최근 '헝거게임') 방송의 잔인한 속성을 보여주지만 그에 열광하는 관음적 시선의 대중이 아닌 주인공에 집중하고 있다. 리얼리티쇼에는 휴먼드라마가 필요하다고 주인공들을 불러모으는 프로그램의 PD는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보여 얄밉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런 주인공들은 영화를 통해 진짜로 가슴 뭉클한 한 편의 휴먼드라마를 만들어낸다. '헝거게임'의 여주인공처럼 게임의 룰 자체를 변화시키지만, 그것이 치명적일 사람은 없다.
내용에서부터 예상가능하듯 '상남자'들이 등장하는데,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의 시너지가 상당하다. 이 영화도 상반기 눈에 띈 '3남자'의 구도로 돼 있다. '베를린'(하정우-류승범-한석규), '신세계'(이정재-황정민-최민식)를 잇는 상남자들의 삼각구도로 주인공은 황정민-유준상-윤제문이다. 이들은 여타 멀티캐스팅과는 또 다른 훌륭한 협연을 만들어낸다.
중심에 있는 인물은 젊은날 88올림픽 국가대표를 목표로 복싱을 했던 임덕규(황정민)다. 하지만 지금은 돈도 잘 못 벌고 중학생 딸과 소통도 잘 안 되는 중년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딸 아이가 사고를 쳐 급전이 필요해 관심도 없던 이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
아직 '신세계' 정청의 잔상이 남아있는 황정민은 이제 변신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배우가 됐다. 임덕규에게는 비열함은 없지만 황정민이 가장 잘 하는 연기 중 하나인 '광기'가 있다. 황정민은 영화 속에서 국수가게 주인에서부터 전설의 파이터로의 모습까지 캐릭터의 변신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오버스럽지 않으면서도 흡인력있게 관객들을 잡아 끈다. 날선 눈빛에는 삶의 깊이가 묻어나고 하이라이트인 격투 장면에서는 실제를 방불케하는 스릴감과 에너지를 뿜어낸다. 여기에 절절한 부성애 코드가 있어 뜨끈하다. 황정민은 실제로 고통스러운 몸 만들기를 시작으로 고된 액션을 극복하며 훈련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출세를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살아가는 샐러리맨 이상훈(유준상)과 일등이 되고 싶은 조폭 신재석(윤제문)이 그들만의 휴먼드라마를 그려낸다. '국민남편' 유준상은 기존의 부드러운 이미지에 폭발력을 덧입었고, 윤제문은 기존의 선 굵은 연기와는 또 다른 3류 인생의 처연함과 치열함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시절 절친들이었던 사연 많은 이들이 한 링에 올라 결투를 벌인다는 자체가 한 편의 완벽한 드라마다.
영화는 한국 액션영화로는 드물게 153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지만, 실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결말에 대한 호기심의 힘이 있기에 지루하지 않다. 영화를 통해 일반인이 아닌 명배우들의 '생존 게임'을 보는 재미 또한 톡톡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4월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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