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의 작전타임] '벼랑 끝 몰린' 이선구 비책, '리베로 양유나'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3.03.28 07: 21

"어? 왜 양유나가 저기에 있지?".
IBK기업은행과 GS칼텍스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 펼쳐진 구미박정희체육관. 경기 시작과 함께 코트로 나온 선수들의 모습을 확인하다가 당황하고 말았다. 주전 리베로 나현정(23) 대신 레프트 양유나(22)가 리베로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후 나현정과 교대로 나서며 양유나는 리시브를, 나현정은 디그를 맡아 '2인 리베로'가 됐고, 이러한 모습은 경기 중후반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선구 감독의 초강수에 당황한 것은 기자 뿐만이 아니었다. 선수들도 당황했다. 익숙치 않은 양유나의 '포지션 파괴'에 GS칼텍스 선수들도 적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만난 정대영은 "자리 문제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고 베띠 역시 "포지션 때문에 혼동이 돼서 1, 2세트가 어려웠던 것 같다. 3세트는 적응이 돼서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다.

더 놀라운 점은 경기 시작 전까지 선수들은 양유나가 리베로로 서는 포메이션에서 손발을 맞춰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1세트 초반, 7명의 선수가 한꺼번에 코트에 나서 서로 당황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던 이유다.
이 감독은 양유나를 리베로로 기용한 이유에 대해 묻자 쑥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나도 참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문을 연 이 감독은 "나현정이 정규리그 때 수비를 참 잘했고 디그가 좋았는데 큰 경기를 치르면서 위축이 많이 된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나현정이 위축되자 그렇지 않아도 불안요소로 손꼽히는 GS칼텍스의 리시브 라인이 흔들렸다. 이 감독이 이 때 떠올린 것은 바로 역할 분담을 하는 2인 리베로 체제였다. 이날 양유나와 나현정의 모습은 지난 시즌 현대건설이 오아영과 김연견 2인 리베로 체제를 가동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 감독의 파격적인 시도는 어떤 결과를 미쳤을까. 선수들은 혼란스러워했고 익숙치 않은 포메이션에 1, 2세트를 넘겨줬다. 결과만 보면 패착에 가까운 카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2의 효과가 있었다. 이 감독은 "양유나가 실수를 안하다가 마지막에 실수해서 교체가 됐는데 그게 나현정에게 약이 된 것 같다"고 은근한 미소를 보였다.
확실히 이날 나현정은 평소에 비해 좋은 경기를 펼쳤다. 갑자기 등장한 이색적인 라이벌의 존재 때문이었을까. 특히 마지막 5세트서 끈질긴 추격으로 디그를 성공시키고 안정된 리시브로 공을 띄워준 나현정의 모습은, 적어도 이 감독에게 있어서는 2인 리베로라는 초강수를 둔 보람이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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