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의 18.44m] 박종윤 희생플라이, 롯데에 불러 올 나비효과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3.03.31 06: 52

춘추시대 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연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소나기가 내려 강물이 덮쳐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다리를 끌어안고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은 어리석은 믿음을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결과론이 지배하는 야구에서도 자주 나오는 말이다. 감독이 부진한 선수를 끝까지 믿어줬을 때 기대에 보답하지 못하면 미생지신이라는 말이 어쩔 수 없이 나오고, 만약 좋은 활약을 펼치면 ‘믿음의 야구’라는 칭송을 듣기 마련이다.
30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롯데와 한화의 개막전에서 롯데 김시진(55) 감독의 내야수 박종윤(31)에 대한 믿음은 자칫 미생지신으로 끝날 뻔했다. 1루수 6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박종윤은 4회 무사 만루에서 병살타로 물러나고, 6회 무사 만루에서는 포수 파울플라이로 아웃됐다. 승부처에서 박종윤은 번번이 고개를 숙였다.

4-5로 끌려가던 8회 박종윤은 다시 선두타자로 나섰다. 대체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루 수비가 가능한 박준서가 남아있던 상황이다. 박준서가 아니라도 조성환 역시 1루 수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타를 쓰고자 했으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박종윤은 여기서도 삼진으로 물러났다.
운명의 장난일까, 롯데는 9회말 1사 만루에서 장성호의 적시타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다시 박종윤의 차례, 이번에는 대타가 나올 것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선 네 번의 타석에서 모두 범타로 물러났던 박종윤이다. 하지만 박종윤은 침착하게 안승민의 공을 중견수 위로 띄워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연결 시켰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개막전 끝내기 희생플라이였다.
결국 박종윤은 김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사실 롯데가 올 시즌 믿음의 야구를 펼칠 것이라는 건 이번 캠프부터 예고되었다. 박흥식 타격코치는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찬스에서 삼진 먹었다고 혼내면 자신감을 잃는다. 범타치고 들어와도 더 파이팅하고 기를 살려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개막전부터 믿음의 야구를 제대로 보여 준 롯데다. 박종윤 역시 경기 후 “앞선 타석에서 결과가 좋지 않아 부담이 있었지만 타격코치님이 편하게 스윙하라고 해 주셔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코칭스태프의 믿음이 있었기에 박종윤의 역전타도 있었다.
박종윤의 끝내기 희생타는 단순히 1경기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올 시즌 롯데는 약화된 타선에 고민을 안고 있다. 새로운 선수가 등장해 잠재능력을 폭발시켜야만 하는 상황이다. 신예의 성장은 코칭스태프의 끝없는 믿음에서 나온다. LG에서 기회를 살리지 못했던 박병호가 넥센에서 꽃을 피운 것도 선수의 기를 살려 줬기 때문이다.
만약 박종윤이 9회 마지막 기회에서도 믿음에 보답하지 못했다면 김 감독은 믿음의 야구를 강하게 밀고나가기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박종윤의 희생타 한 방이 올 시즌 롯데의 성적을 바꿔놓을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물론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선수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성적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벤치에서는 선수의 능력과 여러 변수를 고려해서 적시적소에 선수기용을 해야 한다. 믿음의 야구가 올 시즌 롯데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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