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그들은 삼진을 피하려다 이른 대결로 범타를 양산하기 일쑤였다. 2000년대 후반 끈질긴 타선 응집력으로 강호 반열에 스스로 올랐던 두산 베어스 타선이 2013시즌 개막전부터 유일무이한 2만루포 경기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두산은 지난 30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삼성과의 원정 개막전에서 오재원과 김현수의 그랜드 슬램을 바탕으로 삼성을 9-4로 꺾었다. 3년 연속 개막전 선발 중책을 맡은 두산의 외국인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는 6이닝 7피안타(1피홈런) 3볼넷 2탈삼진 4실점(3자책)으로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두산은 이날 승리로 역대 삼성과의 시즌 개막전 3연패 후 첫 승을 따냈다. 국내 프로야구 역사 상 개막전 단일팀 만루포 두 개도 사상 처음이다.
무엇보다 두산이 득점을 올리는 과정. 만루포 두 개의 몫이 컸다고 해도 타자들이 투수를 공략하는 방법 자체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좋았다. 지난해 두산은 최소 삼진팀(659개)으로 좋은 컨택 능력을 과시했으나 팀 홈런 공동 6위(59개), 병살 1위(129개), 출루율 8위(3할2푼2리), 장타율 6위(3할5푼2리), OPS(장타율+출루율) 6할7푼4리로 최하위에 그쳤다. 이른 스윙으로 파괴력이 떨어지면서 상대 투수들의 체감 두려움이 떨어졌던 팀이다.

그러나 개막전 모습은 달랐다. 두 개의 만루포만 보더라도 그 의미가 컸다. 오재원의 1회 선제 결승 만루포는 2사에서 상대 선발 배영수를 8구까지 괴롭히다 밀어쳐서 만든 만루홈런이었다. 만약 오재원이 범타에 그쳤더라도 배영수의 투구수를 늘리며 진땀을 빼게 했던 배팅이다. 만루포라는 결과물보다 상대 공을 골라내고 파울 커트하며 끈질긴 대결을 펼쳤다는 것을 더욱 칭찬받아야 한 타격으로 볼 수 있다.
김현수의 4회 쐐기 만루 홈런은 2구 째 만에 나온 것이지만 상대의 동요를 읽고 목적타 의식 속에서 때려낸 것임을 높이 살 만 하다. 배영수의 투구수가 80개를 넘어갔고 앞선 손시헌이 낫아웃으로 출루하며 만루가 되었던 순간 김현수는 타석에 서기 전부터 배영수의 직구를 노리고 들어갔다. “저는 원래 직구만 쳐요”라며 농을 던지는 김현수지만 2008년 그가 시즌 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타격왕이 된 데는 당돌한 노림수도 한 몫 했다.
초구 직구가 뒤로 넘어가는 파울이 된 뒤 김현수는 배영수의 2구 째 직구(142km)가 좋은 코스로 날아들자 거침없이 당겨쳤다. 자기 존을 머릿 속에 그려넣고 들어왔다 싶을 때 마음 놓고 휘두르던 김현수의 20대 초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던 배팅이다. 오재원의 만루포가 투수를 불리하게 만들어 놓고 때려낸 홈런포라면 김현수의 홈런은 자신이 쳐야할 공과 상대 투수의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때려낸 것으로 볼 수 있다. 2만루포 뿐만 아니라 경기 전체적으로 타선의 융통성이 돋보인 경기다.
지난해 두산은 유연한 사고의 배팅이 보이지 않아 현장에서도 저평가를 받았던 팀이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두산에 대해 “삼진을 피하려다 2,3구에 범타 아니면 병살로 찬스를 그르친 타선”이라고 평했다. 5회 정수빈의 2루 라인드라이브에 이어 2루 주자 오재원의 귀루 실패로 1사 만루에서 더블 아웃이 나오기는 했으나 이는 정수빈의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갔기 때문에 지난해의 답습이 아니다. 지난해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30일 두산 타선이었다.
물론 개막전 2만루포 등 9점을 뽑은 것은 단 한 경기의 표본일 뿐이다. 다음 경기 그리고 그 다음에도 지난해와 똑같은 패턴을 답습한다면 개막전에서 보여줬던 두산의 화력 아우라는 신기루가 되어 사라질 수 있다. 삼진 피하려다 기회를 그르치던 지난해 두산 타선은 올 시즌 개막전 분위기를 이어가며 환골탈태한 타격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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