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클리닝타임] 무명의 2군 선수, 이만수를 반성하게 한 사연은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3.31 07: 18

이만수(55) SK 감독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정신없이 예전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감독의 손에는 A4 용지 6페이지 분량인 한 선수의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그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는 이 감독의 손과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다.
자신, 혹은 주위의 평가로 이뤄진 그 보고서에는 좋은 내용이 거의 없었다. 이 감독의 머릿속에도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대로 묻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포기해 야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하나”, “구단에서 자르는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면서 “내가 이 선수의 일부분만 보고 있었구나”라는 자기반성을 하기 시작했다. 보고서의 주인공은 내야수 조성우(25)였다.
이 감독은 오키나와 캠프 당시 이런 사연을 이야기하며 멋쩍게 웃었다. 이 감독은 “그랬던 선수가 2년 만에 이렇게 성장할 줄은 누가 알았겠나”라고 하면서 “조성우를 통해 반성을 많이 했다”라고 했었다. 반성의 내용은 선수를 보는 자신의 눈이었다. 이 감독은 “솔직히 말해 선수를 보는 내 직감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 조성우는 2군 감독 시절부터 내가 지켜봐왔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잠재력을 놓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원주고와 한민대를 졸업하고 2010년 SK에 입단한 조성우는 지난해까지 1군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전형적인 2군 선수였다. 지명 순위도 전체 57번으로 높지 않았다. 이 감독을 비롯, 많은 SK 관계자들 중 조성우를 눈여겨본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음지에서 묵묵히 칼을 갈았다. 그리고 기회가 생기자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감독은 “그간 밀려나 있었던 젊은 선수들이 기회가 보이자 쑥쑥 컸다”라고 분석했다.
조성우를 통해 이 감독은 달라졌다. 자신의 직감이나 고집보다는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선수를 바라보겠다고 다짐했다. 플로리다에서 오키나와로 넘어올 때도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다. 오키나와에 데려가지 않을 선수를 뽑는 과정에서 밤잠을 설쳤다. 이 감독은 “내가 ‘조성우의 사례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좀 더 신중하게 선수들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지레짐작 판단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결과물이 SK의 신예 선수들이었다. 조성우를 비롯, 이명기 한동민 박승욱은 전지훈련과 시범경기를 거치며 SK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 감독은 이들에게 꾸준한 기회를 줬다. 한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잠재력을 발현시킬 기회를 주기 위해 애썼다. 결실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세대교체가 더뎠던 SK의 대안세력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열린 LG와의 개막전에서도 이들의 활약은 빛났다. 리드오프로 나선 이명기는 안타 2개를 쳤고 시범경기 전체 타점 1위인 한동민도 2루타를 때렸다. 7회 대타로 등장한 조성우는 자신의 1군 첫 타석을 홈런으로 장식했다. 비록 지긴 했지만 이 감독은 경기 후 “젊은 선수들이 만원관중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기 몫을 해줬다”고 칭찬했다. 흐뭇한 어투였다.
감독은 한 팀이라는 배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신경 쓸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하는 감독은 없다.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특히 감독들의 재임 기간이 계속 짧아지고 있는 추세인 최근에는 이 시행착오가 더 도드라지는 양상이다. 정식감독 2년차를 맞이하는 이 감독도 그 과정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조성우의 사례는 이 감독의 지도자 경력에 큰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선수들은 제각기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감독의 선택에 따라 그 가치의 발휘가 결정된다는 것, 그래서 선수들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 감독이다. 그 교훈을 잊지 않는 초심을 간직할 수 있다면 이 감독도 지도자로서 큰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물론 이는 나머지 지도자들도 곱씹어봐야 할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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