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의 '풍운아' 이천수(32, 인천 유나이티드)의 복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국가대표, 월드컵 출전, 해외 진출 등 축구 선수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영영 그라운드를 밟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꿈은 이루어졌다. 지난 2009년 6월 20일 전북 현대전 이후 무려 1381일 만에 K리그 그라운드를 밟았다. 인천의 고향 팬들은 연신 환호와 박수 갈채를 보내며 영웅의 복귀를 반겼다. '뜨거운 감자' 이천수의 얘기다.
▲ 이천수 본인의 부활이 먼저

이천수는 지난달 31일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4라운드 대전 시티즌과 홈경기서 1-2로 뒤지고 있던 후반 7분 인천의 해결사로 나섰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나서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빠른 발은 여전했다. 전매특허인 측면 돌파도 선보였다. 프리킥과 코너킥도 도맡았다. 오른발 왼발 머리를 가리지 않고 상대 골문을 겨냥했다. '이천수'라는 이름 석 자를 확실히 새겼다. 분위기를 바꿔놓을 수 있는 확실한 카드였다.
실전 경험은 까마득했다. 지난 2011년 11월 26일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뛴 이후 1년 4개월 만의 실전 경기였다. 희망도 봤지만 분명 아쉬움도 남겼다. 옛 이천수를 떠올렸던 골수 팬들이라면 퍽 실망했을 법도 했다. 드리블은 투박했고, 볼 컨트롤도 미숙했다. 영점 조준에 실패한 슈팅은 골문이 아닌 하늘로 향했다. 이천수는 "많은 팬들이 찾아와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공격수로서 해결을 못 해 인천과 팬들에게 죄송하다"면서 "1경기 1경기 뛰다 보면 100%로 몸이 올라올 것이다. 기술 피지컬 감각 등 모두 완벽하지는 않다. 끌어올리는 게 내 몫이다. 약속드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 김봉길 매직의 이천수 활용법은
"어떤 선수든지 공백기를 가진 뒤 첫 경기는 힘들 것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다음 경기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김 감독의 믿음이다. 세밀함과 정확성에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만큼 임팩트는 강렬했다. 수장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관건은 활용법이다. 김 감독은 "측면, 중앙을 가리지 않고 공격 전방위에서 활약이 가능하다"며 활용법을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밝혔다. 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포지션은 섀도우 스트라이커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자리는 '슈퍼 루키' 이석현이 꿰차고 있다.
대전과의 후반전이 해답이 될 수 있다. 다소 부진했던 좌측면 공격수 남준재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찌아고와 바통을 터치했다. 김남일과 함께 1차 저지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구본상은 이천수와 임무를 교대했다. 섀도우 스트라이커 이석현이 구본상의 위치로 이동했고, 이천수가 그 자리를 꿰찼다. 공격적인 전술이었다. 당시 2-1로 앞서고 있던 대전은 잔뜩 움츠린 채 뒷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인천은 이천수를 필두로 찌아고, 한교원 등을 앞세워 파상 공세를 펼쳤다. 결국 골문을 열지는 못했지만 경기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이천수가 측면에 위치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남준재 혹은 한교원이 빠지고 이천수가 좌우측면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석현은 그대로 섀도우 스트라이커 임무를 맡고 김남일 구본상이 포백을 보호한다. 이럴 경우 기존의 전술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 다만 실전 감각이 살아난다는 가정 하에 날카로운 킥력을 갖춘 이천수의 존재는 더욱 다양한 공격 옵션을 선사한다.
경쟁 상대는 명확하다. 이석현은 대학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로 뛴 바 있어 공수에서 모두 활용이 가능하다. 상황에 따라 공격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천이 수비적인 전술을 취하지 않는 이상 구본상보다는 이석현이 확실히 매력적인 카드다. 따라서 이천수와 이석현은 경쟁보다는 공존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천수가 경쟁을 벌일 이들은 남준재 한교원 등 측면 공격수들이다. 그간 인천의 주 공격루트가 남준재와 한교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벌일 경쟁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 K리그 클래식 부흥 이끌 수 있을까
"이천수 화이팅!, 이천수 사랑해요!", 이천수가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경기장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를 보기 위해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 운집한 관중은 1만 103명. 이천수가 볼을 잡거나 슈팅을 때리면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박수 갈채가 이어졌다.
지난달 3일 경남 FC와 홈 개막전에서는 1만 4901명이 들어찼다. 언뜻 보면 관중 수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알다시피 개막전에는 갖가지 방법으로 관중을 동원한다. 인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대전과 경기가 열린 31일은 옆 동네 문학경기장에서 SK와 LG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만 명이 넘는 팬들이 이천수를 보러 왔다. '이천수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볼 수 있다.
판은 만들어졌다. 기존 김남일 설기현에 이천수가 가세하며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이 한 데 모였다. 팬들은 11년 전 추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김남일의 스루 패스를 받은 이천수가 크로스를 올리고, 설기현이 골망을 흔든다. 한국 축구의 전성기를 대표했던, 30대 중후반을 바라보는 노장 3총사가 골 세리머니를 함께 펼친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팬들의 가슴 한 구석을 울릴 수 있는 스토리가 생겼다. 팬들의 발걸음이 인천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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