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과 이야기를 할 때 언제나 눈을 바라보는 사람. 눈빛에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배우 유선(37·왕유선)과의 짧은 만남 후 스친 생각이었다.
연기자들과의 인터뷰가 언제나 유쾌할 수는 없다. 기자도 사람이기에 열에 아홉은 판에 박힌 질문을 던진다. 연기자 역시 열에 아홉은 미리 준비한 교과서에 나올 법한 답을 내놓는다. 더욱이 작품을 시작하거나 끝난 후에 하는 인터뷰는 서로가 피곤할 정도로 지루할 때가 많다.
그런데 유선은 달랐다. MBC 월화드라마 ‘마의’가 종영한 후 만난 유선은 눈빛과 어조에 진심을 담았다. 그의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선은 백광현(조승우 분)과 강지녕(이요원 분)의 바뀐 운명을 알고 있는 수의녀 장인주를 연기했다. 단아하고 기품이 넘치는 인물. 인주는 유선에게 자로 잰 듯한 딱 맞는 맞춤복이었다. 그는 인주라는 인물을 연기해 ‘마의’를 묵직하고 안정감 있게 이끌었다.
‘마의’는 지난 해 10월 1일 첫 방송 이후 무려 6개월 동안 안방극장을 찾았다. 추운 날씨가 거듭되는 가운데 촬영이 고되기로 유명한 사극이었으니 고생은 더했다.
“종방연 때 그동안 고생했던 영상을 보니까 뭉클했어요. 성심성의껏 찍었는데 아무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송국에서 배우들에게 고생했다고 감사패를 줬는데 무척이나 고마웠죠.”
‘마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병훈 PD의 시청률 마법은 여전히 통했다. 전작과 다르지 않은 진부한 사극이었다는 아쉬운 시선도 있다. 유선은 드라마에 대한 애착이 있다.
"이병훈 감독님도 말씀하셨지만 우리 드라마는 선하고 착해요. 감독님이 우리 드라마가 막장의 요소가 없는 건강하고 밝은 드라마라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셨죠. 자극적인 전개 없이도 높은 시청률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이병훈 감독의 작품 단물 빠졌다?
사실 '마의'는 줄곧 이병훈 감독의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작과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로 일명 자기복제 논란도 불거졌다. 그런데 유선은 생각이 달랐다.
“물론 이병훈 감독님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은 있겠죠. 그 속에 권선징악을 담고요. 분명한 것은 권선징악이라는 밝고 건강한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원한다는 것이에요. 감독님의 작품들이 조금 비슷할 수 있겠죠. 하지만 ‘마의’의 시청률이 높았던 것은 감독님이 하고자 하는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시청자들이 좋아한다는 뜻 아닐까요?”
유선은 이번 드라마에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미모를 표현했다. 분명히 인주는 광현의 부모와 나이가 비슷했지만 주름이나 흰머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끼리 인주가 스스로 침을 놓거나 한약을 먹고 젊어지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어요. (웃음) 인주가 극중에서 나이 들게 보이지 않았던 것은 감독님의 뜻이었어요."
이병훈 감독은 여배우는 작품에서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유선이 작품 속에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젊은 미모를 유지한 이유였다.
“감독님이 저에게 나이 들어 보이는 분장을 시키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연기로 표현했어야 했어요. 세월이 흐른 후 인주가 나이 들었으니까 목소리 톤을 무겁게 하거나 연배가 있어 보이는 행동을 연기했죠.”

유선에게 이병훈 감독의 차기작이 제작된다면 참여하겠느냐고 물었다.
"시간이 지난 후 감독님이 좋은 작품에 좋은 캐릭터를 맡겨주시면 할 거예요. 감독님의 혈기와 열정이 젊은 사람들보다 더하기 때문에 새로운 작품을 하실 것 같아요."
유선은 평소 단아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는 반전이 있는 인물을 연기했다. 하지만 안방극장에서는 주로 단아하고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배우 중에는 단아한 이미지를 가지고 싶어하는 배우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이젠 벗어던지고 싶어요.(웃음) 데뷔했을 때는 배우는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고 주변 분들이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도 의도한 것은 아닌데 지적인 이미지로 굳어졌죠. 이제는 작품을 통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유선의 실제 성격은 어떨까. 그는 인터뷰 내내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꾸미고 포장하는 법을 알 만큼 연륜은 쌓였다. 하지만 그는 있는 그대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아무래도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여성 캐릭터의 폭이 좁다. 유선이 영화에서 강렬한 연기를 하고 드라마에서는 기존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도 이유가 있다. 유선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연기를 물어보니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작품에 있어서 그는 망설임이 없는 저돌적인 배우다.
“밝고 유쾌한 연기 하고 싶어요. 아 조금은 웃겨도 좋을 것 같아요. 또 액션 연기도 하고 싶고요. 범인 역할은 영화에서 해봤으니까 범인 잡는 형사도 하고 싶어요. ‘파이란’ 같은 깊이가 있는 멜로도 하고 싶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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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