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영화제가 시작될 때마다 여배우들의 노출 전쟁이 주요 포털 사이트와 연예 프로그램을 도배한다. 가슴, 엉덩이, 허리 등 이들이 신체를 얼마나 드러냈느냐가 레드카펫 흥행을 좌우한다. 걷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 웬만한 올림픽 경기 결승전 못지 않다. 여배우들은 왜 그런 옷을 입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눈에 거슬리는데 이상하게 자꾸 시선이 가는 막장극을 보는 것과 같다.
이 연장선에서, 요즘 예능 시장에서는 ‘19금 코드’가 ‘힐링 코드’ 만큼이나 인기다. 떼거리로 나와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나누던 집단 토크쇼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게스트 한 명이 MC들의 극진한 관심 속에 자신과 둘러싼 루머, 사건, 사고에 관해 해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 ‘힐링’ 예능은 무조건 착하면 되니까 쉬울 수 있다.
하지만 ‘19금’ 예능은 이야기가 다르다. 여배우들의 레드카펫처럼 초반엔 무조건 욕을 먹게 돼있다. 단, 제작진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욕을 하면서 보게 만들어야 하고 나중에는 품격 있는 19금이었다는 평가를 들어야 한다는 숙제이자 목표를 갖는다. 그래서 화제성 때문에 선택했던 방송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따끔한 질책에 아찔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곤 한다.

요즘 SBS ‘화신’이 그렇고, tvN ‘SNL코리아’가 그렇다. 지금은 종영한 프로그램이지만 MBC ‘놀러와’도 19금 토크를 진행하며 반짝 상승세를 누리기도 했다. 각 방송사에서 '간판'이라고 할 만한 프로그램들은 하나같이 아슬아슬한 토크 소재로 시청자들이 눈과 귀를 잡아 끌었다. '찐~하게' 여자하고 남자하고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한다고 19금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야하긴 야한데 무턱대고 야하면 안 되고 그렇다고 움츠러들어 시시한 19금 이야기를 하면 학창시절 가정시간이나 성교육 시간에 봤을 법한 교육 비디오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안하느니 못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는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 관대한 룰을 적용받는다. 삐 처리 돼야 할 욕설이 극의 흐름 상 필요하기 때문에 여과 없이 실린다. 하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예능은 그렇지 않다. ‘개그콘서트’에서는 남녀 개그맨이 뽀뽀를 할 때마다 가족 단위 시청자들로부터 호된 소리를 듣는다. 애들이 보면 어쩌냐는 것이다. 물론 당연한 지적이다. 사회 풍자를 할 때도 좋은 시도라는 평가와 함께 웬 정치색이냐는 상반된 반응을 마주해야 한다. 주눅 든 개그맨의 개그는 '절대 안돼'의 풍자에서 '이러시면 곤란한데'로 톤 다운된다. 공손한 풍자와 개그가 재미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은 19금 장치가 필요하다.
19금 개그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SNL코리아'다. 미국의 장수 예능 프로그램 'SNL'의 판권을 구입해 제작하는 'SNL코리아'는 시즌1(당시 15세 이상 시청등급)의 쓴 맛을 본 후 변신에 성공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보여줬던 ‘여의도 텔레토비’는 국회에 오르내리며 정치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시청자들은 ‘위켄드 업데이트’를 볼 때마다 은근한 쾌감에 터지는 미소로 입술을 질끈 물어야했다.
왜 'SNL코리아'가 인기일까. 19금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는 점에서 비결을 찾을 수 있다. 공손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19금이 되기 위해 기존의 프로그램보다 철저한 사전 검열을 거친다. 1차적으로 작가 및 연출진 회의, 2차적으로 내부 관계자 시사 및 모니터링 회의, 3차적으로 드라이 리허설을 통한 수위 조절, 4차에서는 실제 여성 관객들의 반응을 토대로 코너를 확정한다. 여성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이유는 남성 시청자들에 비해 선정적, 폭력적 장면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5차, 6차 검열 과정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온에어되기 전까지 호스트를 제외하고는 ‘확정’이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2시간 전에 실시되는 프리뷰에서 코너가 엎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예의를 갖춘 19금 코미디 덕분에 ‘SNL코리아’의 화제성은 높다. 호흡을 맞추고 있는 신동엽, 김원해, 김슬기, 박재범, 이병진, 정성호, 김민교 등 고정 크루들의 활약과 자리를 잡아가는 19금 개그가 탄탄한 인기를 만들었다.
분명 19금 코드가 인기라고 해서 남발되는 환경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 공공재인 전파를 황색 저널로 물들이는 도적 행위와 연결될 수 있다. 다만 받아들일 수 있는 충격의 강도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의 범위가 넓은 기성 세대에게 10대의 감성을 요구할 수만은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린이,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어른들도 멋진 생각을 키워가고 응원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공유하는 장이 필요하다. 반대로 19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탄생한 프로그램이라면 그에 걸맞은 모양새를 띄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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