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업-커브 정도를 제외하고 던지는 모든 공들이 웬만한 투수 직구 빠르기다. 저런 투수가 한국에서 뛰고 있다니”.(웃음)
‘메이저리그에 있을 투수가 왜 한국 무대에서 뛰고 있는가’라는 타 팀 전력분석원들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손쉽게 150km을 넘기는 투수의 낮고 꽉 차게 제구된 공. SK 와이번스의 새 외국인 좌완 조조 레이예스(29)가 올 시즌 히트상품 후보로 초반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레이예스는 4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로 나서 7이닝 동안 105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탈삼진 3개, 사사구 4개) 3실점으로 호투하며 한국 무대 첫 승을 올렸다. 최고 구속 152km에 포심 뿐만 아니라 컷 패스트볼, 슬라이더 등을 구사하며 두산 타선을 막은 레이예스다.

1회를 손쉽게 삼자범퇴로 마무리한 레이예스는 2회말 김동주에게 7구 째 컷 패스트볼(148km)을 던졌다가 좌월 솔로포를 내주며 선실점했다. 레이예스가 못 던진 것이 아니라 스트라이크 존 하단으로 잘 걸친 결정구였으나 김동주의 컨택 능력과 장타력이 돋보인 순간이다.
이후 레이예스는 5회까지 크게 흔들리지 않고 두산 타선의 예봉을 꺾었다. 그러나 팀이 6회초 득점 기회를 날려버린 뒤 6회말 손시헌에게 좌전 안타, 민병헌에게 볼넷을 내준 뒤 박건우의 희생번트로 1사 2,3루 위기를 맞은 레이예스. 김현수의 타구가 전진 시프트를 펼친 2루수 정근우 앞으로 흘러갔으나 정근우가 이 타구를 제대로 잡지 못하며 추가 실점한 레이예스다. 그러나 다행히 7회초 이명기의 2타점 역전 3루타가 터지며 레이예스에게 리드를 선물했다.
7회말 레이예스는 오재원에게 3루 내야안타, 양의지에게 볼넷을 내준 뒤 2사 1,3루에서 민병헌에게 1타점 우전 안타를 허용, 4-3 쫓기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나 레이예스는 박건우를 유격수 땅볼로 일축하며 리드를 놓치지 않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SK는 8회초 3득점으로 7-3 추격권에서 벗어나며 레이예스를 안심하게 했다.
기록은 특급이 아니었을 지 몰라도 이날 레이예스의 투구 내용은 특급 에이스였다. 컷 패스트볼도 심심치 않게 140km대 후반은 물론 150km를 찍은 데다 슬라이더도 140km를 상회했다. 당초 처음 낙점했던 덕 슬래튼의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으로 SK가 부랴부랴 지난 1월 데려왔던 레이예스는 사실 지난해 말 다른 팀들과도 접촉이 있었던 좌완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선수 본인이 메이저리그 도전에 더욱 뜻을 뒀고 그만큼 에이전트가 많은 금액을 요구하는 바람에 잠시 국내 구단과의 창구가 닫혔던 투수. 해가 넘어간 뒤 SK는 메이저리그 도전 여부에 회의를 품던 레이예스를 설득해 영입에 성공했다. 한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SK가 레이예스에게 접근한 타이밍이 굉장히 좋았다”라며 입맛을 다셨다.
이미 3월 30일 문학 LG전에서 5회까지 퍼펙트 피칭을 펼치는 등 구위와 제구를 모두 뽐낸 레이예스는 기록보다 더욱 뛰어난 구위와 제구로 위력을 떨쳤다. 이날 잠실을 찾은 타 구단 전력분석 관계자들은 ‘대단한 투수’라며 하나 같이 입을 모았다. 모 구단 전력분석원은 “던지는 공 하나하나가 웬만한 투수들 직구보다 더 빠르다. 왜 한국에서 뛰고 있는 것인가”라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패스트볼 계열 구종을 제외해도 슬라이더가 134~141km, 체인지업이 130~136km였다. 대체로 100~110km대 구속이 평균적인 커브 구종이지만 레이예스의 커브는 3개가 127~129km로 계측되었다. 보여주는 유인구가 아니라 모두 존 안에 들어오는 결정구였다. 유망주 시절 괜히 애틀랜타 팜이 주목한 투수가 아니었음을 증명한 레이예스다.
“저 정도 되는 투수가 왜 한국에서 뛰고 있지. 공 하나하나를 지켜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들더라”. 타 구단 전력분석원들의 극찬과 함께 헛웃음을 자아낸 레이예스는 2013시즌 최고 외국인 투수 중 한 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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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