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우가 표범처럼 빠르게 스타트를 끊는다면 (이)명기는 스타트가 약간 느린 대신 말처럼 달리며 가속도가 붙는 스타일이다. 발 빠른 선수지만 도루 능력은 약간 아쉽다”.
5경기 동안 1개의 도루는 약간 아쉬움이 있는 것이 사실. 대신 그는 정확한 타격과 2베이스 이상을 거침없이 달리는 베이스러닝으로 팀 2연승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SK 와이번스의 8년차 외야수 이명기(26)가 점차 숨겨졌던 진가를 발휘 중이다.
이명기는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 2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해 7회 2타점 역전 결승 중견수 방면 3루타 포함 3안타 3타점을 올리며 팀의 7-5 승리를 이끌었다. 이명기의 활약에 힘입어 SK는 개막 3연패 아픔을 씻고 2연승으로 휴식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천고를 졸업하고 2006년 SK에 2차 9라운드 입단한 이명기는 그해 신인지명 막차를 탔던 선수다. 당시 SK는 1차 지명 이재원을 비롯해 인천고 출신 4명을 지명했다. 에이스 김성훈(2차 1라운드)과 잠수함 김용태.(2차 4라운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명한 선수가 바로 외야수 이명기였다. 이재원과 김성훈이 청소년대표로 일찍이 이름을 알렸고 김용태는 김성훈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던 기교파 유망주. 그에 반해 이명기는 무명에 가까웠다.
시작은 늦었지만 현재 이명기는 고교 동기들 중 가장 앞서가고 있다. 이재원이 왼손 유구골 골절상으로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고 김성훈과 김용태가 각각 2007년, 2006년 방출되며 팀에서 자취를 감춘 가운데 이명기는 올 시즌 첫 5경기 4할5푼(20타수 9안타, 전체 5위, 4일 현재) 4타점 1도루를 기록 중이다. 장타율 7할에 출루율 4할5푼5리로 합산 OPS가 1이상(1.155)이다.
불과 5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현재 페이스는 9개 구단 전체 타자들을 봐도 굴지에 꼽히는 이명기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도루가 부족하다는 점. 4일 두산전에서 2루 도루를 성공시킨 이명기지만 3일까지는 단 하나의 도루도 없었다. 4일 경기 전 이만수 감독에게 ‘이명기 0도루’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이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이명기도 정근우 못지 않게 굉장히 발 빠른 선수다. 다만 리드 후 정근우가 빠른 스타트를 끊는 반면 이명기는 스타트는 약간 느린 대신 달리면서 가속도가 붙는 주자다. 정근우를 표범에 비유하자면 이명기는 말과 같다”.
1-2로 뒤진 7회초 1사 1,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명기는 역전 결승 3루타로 이 감독이 증언한 말 주루를 보여줬다. 중견수 정수빈의 다이빙캐치가 실패하며 타구가 뒤로 흘러 발 빠른 이명기가 3루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 그런데 이명기가 타격 후 3루를 밟기까지 걸린 시간은 11초 36이었다.
홈플레이트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3루까지 거리 총합은 82.29m. 그러나 직선을 뛰는 것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돌기 때문에 코너를 곡선으로 뛸 수 밖에 없어 실제 거리는 훨씬 멀고 곡선 주루 시 스피드 감소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 베이스러닝에서 대체로 11초 F 내외~11초50 가량이 나오면 준족에 속하는 데 이명기는 그 범주 안에 속한다. 이 감독이 말한 가속도가 기반된 말 주루를 증명하는 홈플레이트~3루까지의 속도였다.
3일 경기서는 김동주의 좌전 안타를 잡은 뒤 2루에서 3루를 거쳐 홈으로 뛰던 준족 이종욱을 송구로 잡아내며 위기를 넘겼던 이명기다. 팀 내 송구 정확도 면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얻었다던 이명기였으나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수훈을 보여주며 2연승에 공헌했다.
경기 후 이명기는 “결승타 당시 타석에서 투수교체 시기에 좌완이 나올 줄 알았는데 우완이 나와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미 이전에 윤명준의 공을 쳐봤던 만큼 칠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가졌다”라며 “팀 승리에 도움이 돼서 기쁘다. 항상 나 자신에게 스스로 긴장하고 실수만 하지 말자고 주문한다”라며 긴장감을 통해 더 나은 활약을 펼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듯 오랫동안 붙박이 주전 선수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 언젠가는 후계자를 찾아 원활한 세대교체를 하는 것이 팀의 대계이자 선순환. 도루 능력은 다소 떨어져도 특유의 가속도로 호쾌한 말 주루를 펼치는 동시에 뛰어난 컨택 능력까지 보여준 이명기는 점차 SK 전력의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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