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
이만수 SK 감독은 지난달 30일 문학구장에서 열렸던 LG와의 개막전에서 역전패 한 뒤 라커룸을 찾았다. 역전패로 시즌을 출발한 선수단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서였다. 선발 투수로 나서 잘 던졌지만 동료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승리를 날린 외국인 투수 조조 레이예스(29)도 그 대상 중 하나였다.
레이예스는 이날 7⅓이닝 동안 3피안타 2볼넷 9탈삼진으로 역투하며 승리투수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불펜의 난조로 한국무대 첫 승이 무산됐다. 승리가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기분이 좋을리는 없었다. 하지만 예상 외로 레이예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이 감독의 격려에 레이예스는 “야구일 뿐이다”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외국인 선수에게 기록은 그 자체가 돈이다. 승리 수당 등 부수적인 수입이 꽤 크다. 그간 몇몇 외국인 선수들이 민감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그러나 레이예스는 달랐다. 오히려 눈치를 보는 동료들의 기분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는 후문이다. 레이예스는 이에 대해 “누가 지는 것을 좋아하겠나. 하지만 시즌은 길게 봐야 한다. 개막전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 레이예스가 재수 끝에 한국무대 첫 승에 성공했다. 레이예스는 4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4피안타 3탈삼진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묵직한 구위는 여전했고 위기관리능력까지 선보이며 팀 2연승에 발판을 놨다. 간혹 나온 동료들의 미숙한 플레이도 “괜찮다”라는 신호를 보내며 다독였다. 그리고 위기에서 강한 모습을 선보이며 동료들이 품었을 마음의 짐도 덜어냈다. 야수들도 11안타, 7득점을 올리며 레이예스를 도왔다.
경기장 밖에서는 동료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스마일맨’이지만 그라운드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레이예스다. 스스로 “야구를 할 때는 진지하다”고 말할 정도다.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팀의 에이스로 낙점됨에 따라 스스로 느끼는 부분도 많아졌다. 덕아웃에서 생글생글 웃던 레이예스는 팀 초반 부진에 대해 묻자 “이제 막 시즌을 시작했을 뿐”이라고 낯빛을 바꿨다. 팀을 생각하는 자세는 국내 선수들 못지않다.
이제 첫 승을 거둔 레이예스는 또 하나의 선물에 가슴 설레고 있다. “한국에서 사는 것이 재미있다. 이제는 맛집도 찾아다니고 있다. 한국 문화생활에 조금씩 접근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미소 지은 레이예스는 “가족들 모두가 6일 한국에 들어온다”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레이예스의 가족들은 8월까지 한국에 머물 예정이다.
아무리 성격이 밝다고 해도 낯선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이 안정감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레이예스의 앞으로 활약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레이예스는 “내 가족들이 SK에 행운을 몰고 올 것이다”라며 크게 웃었다. 그 행운의 실체는 알 수 없지만 SK는 이미 레이예스라는 복덩이를 통해 행운을 확인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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