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 그 겨울 지나니 탄탄대로 위다[인터뷰]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3.04.07 11: 19

오수는 많이 웃고 싶었나 보다. 죽을 만큼 사랑했고 지겹도록 울었다. 시력을 찾은 오영과 재회했고 벚꽃이 흐드러진 길 위에서 입맞춤도 했다. 행복할 시간만, 웃을 일만 남았다. 
오수 캐릭터에서 빠져 나온 조인성도 그랬다. 오랜만에 만난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위해, 아니 실은 스스로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미쳤다 돌아왔다. 지난 5일 서울 한남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연신 미소를 띤 얼굴로 때론 깔깔 넘어가며 폭소하고 많은 말을 뱉어냈다.
얼마나 웃고 싶었을까. 또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5년 만에 느낀 연기의 쾌감을, 그리고 커다란 성취 후에 느낀 이 짜릿함을. 이제 한 짐 덜고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배우 인생 2막을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감도 찾았고 불안도 날렸다. 의도치 않았기 때문에 더 조바심이 났던 5년의 공백은 이제 끝이 났고 조인성은 지금, 탄탄대로 위에 서 있다.

한물갔다 걱정? 개나 주라지!
"한물갔었죠. 그래도 다행히 이 작품 때문에 이제 조금은 돌아오지 않았나요?(웃음)"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시작하기 전, 군 전역 후에도 2년이나 내놓는 작품이 없는 그를 두고 누군가는 '한물갔다'고 혹평했다. 풋풋했던 꽃미모가 변했다고도 했다. 사실 전역 전부터 영화 '권법'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던 만큼 초고속 컴백이 예상됐던 그가 2년을 은둔했던 건 팬들에게도 속상한 일이었다. 물론 누구보다 초조했던 건 당사자다. 한물갔다는 누군가의 무심한 말이, 그의 가슴에는 비수가 되어 꽂혔을 테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새로운 이미지를 상기시킬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었던 것 같아요. 또 전보다 나이도 들었고요.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군대 티'를 벗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군대 다녀온 분들은 알거예요. 2년 반 동안 만날 땅 파고 작업하고..(남자 기자를 쳐다보며)아시죠? 절죠. 군대에서 절은 티가 있잖아요.(웃음)"
'권법'을 기다리느라 여러 작품을 놓쳐야 했고 기다림도 길어졌지만 그래도 불안감을 떨칠 수 있던 건 측근들의 응원 때문이었다.
"제 주변에서는 빨리 작품을 하라고 보채지 않았어요. 특히 고현정 선배(현 소속사 식구)가 '걱정 말라'며 안심시켜 주셨죠. 좋은 작품을 천천히 고를 수 있도록 해주신 거 같아요."
그렇게 기다리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만난 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감히 내가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이란 생각에 처음엔 부담도 많았지만, 이 역시 절친의 응원 속에 각오를 다지며 출발했다.
"(차)태현이 형을 만나 술을 한잔 하다가 '노희경 작가님 작품을 하게 됐다'고 말했더니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형에게 겁이 난다고 했는데 형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노 작가님이 만일 정말 어렵고 불편한 분이라면 다른 배우들이 그 분과 작업을 했겠나. 많은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작가다. 좋은 분이고 정확한 분일 거다. 나도 네가 부럽다'고 말해주는 데 고마웠어요."
조인성의 비주얼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서스펜더, 롱 카디건, 날렵한 슈트 맵시가 방영 내내 화제를 모았다. 전작인 '비열한 거리', '발리에서 생긴 일', '봄날', '별을 쏘다' 등 많은 작품에서 역시 우월한 스타일링과 비주얼로 늘 이슈가 됐던 배우, 소감은 무엇일까.
"실생활에서는 저도 그렇게(오수 패션처럼) 못 입겠어요.(웃음) 저보다 제 스타일리스트들이 잘 해준 거겠지만 새로운 제시를 해주는 것 같아요. 사실 앞서가고 금기시되는 걸 깨고, 깨고.. 그런 게 패션이니까요. 그런 새로운 제안들을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또 이번 생에는 운 좋게도 부모님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거니까 십분 활용하려고 하죠. 제 패션을 보시면서 남성분들이 희망을 갖고 대리만족 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자란 키가 지금의 '기럭지'를 완성했다. 타이트한 클로즈업 샷이 신경 쓰여 촬영이 없는 틈을 타 팩을 붙이며 피부 관리도 했다. 솜씨 좋은 스타일리스트들이 외국의 사례를 모아가며 멋들어진 스타일링을 도왔다. 그렇게 오수는 태어났다.
공백 걱정 따윈 개나 주라지. 물오른 연기력이, 안구를 정화시키는 비주얼이, 건재함의 증명 아닌가.
 
최고의 파트너, 노희경과 송혜교에게 감사를!
노 작가와는 첫 호흡이다. 고등학교 땐가, 어머니가 노 작가의 드라마 '거짓말'을 보던 모습이 아직까지 생생하단다. 노희경은 그런 사람이다. '감히 내가 노 작가의 작품에서 연기를 하게 되다니!', 그 역시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노희경 작가님은 대가(大家)이시잖아요. 아무래도 어렵죠. 어른이시고. 그래서 처음엔 그런 분과 함께 작업을 하려니 그 이름에서 오는 포스랄까. 무섭지 않을까 생각했죠. 하지만 실제로 만나 봬니 제 말을 들으려고 해주시는 분이었어요. 또 제 전작들을 다 보셨더라고요. 그렇게 다 보는 분들이 없거든요. 많이 들어주셨고 늘 공동 작업이라는 걸 상기시켜주려고 하셨어요. '내가 잘 하는 게 있고 네가 잘하는 게 있고 감독이 잘 하는 게 있고, 우린 보완 관계다. 작품은 같이 만드는 거다'라고 하셨어요. 드라마를 하면서 모두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은 건 이번 작품이 처음인 거 같습니다."
오랜 친구 송혜교와의 작업도 기쁘기 그지없었다. 전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20대 시절을 함께 한 사이이기도 하다. 워낙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편안했고, 동시에 프로 의식을 발휘해 절정의 호흡을 보여줬다.
"고맙죠. (송)혜교가 잘해줘서 저도 잘 보일 수 있었던 같아요. 또 제가 잘 해줘서 혜교도 잘 보일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참 잘했어요, 혜교가. 마치 눈물 스위치가 있는 듯 정말 잘 울더라고요. 스위치를 똑 누르면 눈물을 뚝 흘리는 거 같지 않던가요?(웃음)"
 
그래서 노 작가나 송혜교와는 기회가 된다면 또 다시 호흡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당사자들이 원하고, 대중도 원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노 작가님이 저를 찾아주신다면, 또 작업하고 싶고요. 혜교랑도 또 연기 해보고 싶긴 하지만 보시는 분들이 그걸 원할까 싶어요. 과연 오수, 오영을 잊고 우리를 바라봐줄 수 있을까요?"
얘기하는 내내 노 작가에 대한 존경, 송혜교에 대한 신뢰가 드러났다. 그래서였을까. 조인성은 종방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노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었다고 했다. 서럽다, 허하다, 이 알 수 없는 심정을 어찌 하면 좋은 거냐고 물어볼 곳은 노 작가의 품이었나 보다.
연기 성장? 나이와 세월의 흔적 
아이처럼 엉엉 울고, 흐느끼며 절규하고, 소리 없는 무음 오열까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속 오수는 참 많이, 그리고 여러 모습으로 울었다. 눈물 연기를 포함해 다양한 감정 연기가 극찬을 받으며 시청자들을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연기력이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들이 쏟아진 건, 감사하지만 스스로도 생각을 거듭하게 되는 부분이다.
"이제 그만 울었으면 좋겠어요.(웃음) 다들 아시겠지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울 일이 많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화낼 일도 줄어드는 거 같고... 그래서 연기를 하면서 울음을, 슬픔을 표현할 때가 가장 힘들어지고 스스로 거는 기대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노 작가는 눈물 연기에 대해 생각이 많던 그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건네며 등을 두드려줬다.
"우는 장면이 많아서 제가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노 작가님이 '네가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했던 것처럼 똑같이 울어도 지금은 전혀 다르게 보일 거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 때보다 지금의 넌 연륜이 쌓였고 표현 방법도 다채로워졌을 것이니까'라고 말씀하셨어요."
 
노 작가, 김규태 감독과 함께 우는 장면 대신 슬픔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래서 오영의 수술이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나온 오수가 느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병원 복도에서 선 뒷모습과 손 클로즈업 샷으로 그렸다.
내면 연기가 깊어졌다는 평가를 전하는 취재진에게 "전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아요. 똑같이 했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나이를 먹은 어드밴티지가 있지 않을까요. 제가 내적으로, 지적으로 훨씬 더 성숙해졌다고 스스로를 평가할 수는 없는 문제인 거 같고... 세월의 흔적, 거기서 얻는 힘이 저를 좀 더 다르게 보이도록 한 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도 전 아직 제가 20대라고 생각하며 살아요.(웃음)"
조인성은 그야말로 목 놓아 울었고 원 없이 토했다. 괴로웠고 짜릿했던 5개월을 보내고 나니, 드라마 속 벚꽃 엔딩처럼 화사하고 눈부신 봄날이 눈앞에 있다.
이제 좀 즐겨도 된다. 지금의 영광을. 조금은 팍팍했을지 모를 공백을 뚫고 나와 만난 좋은 작품, 그리고 마음에 들었던 사람들과 함께 한 작업의 여운을 충분히 느꼈으면.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 밝힌 것처럼 병역 의무를 해소하고 홀가분해진 지금, 새 소속사에 둥지를 틀면서 갖게 된 안정감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마음껏 연기하기를. 배우 조인성, 남자 조인성의 인생 2막이 덜컹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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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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