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을 모토로 올 한해를 시작했던 SK가 귀중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육성의 핵심이 되는 전용연습구장 건설의 첫 삽을 뜬 것이다. 구단과 지자체의 노력도 중요한 원동력이었지만 이는 한 인물의 대승적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김성수(83) 대한성공회 주교가 그 물꼬를 튼 주인공이다.
SK와 인천광역시 강화군은 8일 강화군 길상면 공설운동장에서 유천호 강화군수를 비롯한 인천광역시 관계자들, 임원일 SK 와이번스 대표이사와 이만수 감독 등 구단 관계자들, 지역 주민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SK 드림파크·강화군 생활체육시설’ 기공식을 열었다. 총 11만5386㎡(SK 8만3749㎡, 강화군 3만1637㎡)의 부지에 들어설 이 스포츠타운은 강화군과 SK가 공동으로 시설 조성에 나선다.
전용연습구장을 확보하려는 SK와 낙후된 스포츠 시설 개선을 추구했던 강화군이 3년 가까이 머리를 맞댄 끝에 얻은 결실이다. 전용연습구장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SK는 지난 2010년부터 강화군과 지속적으로 스포츠타운 조성을 논의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2010년 12월 양측 사이에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2011년 2월 투자확약서를 체결하며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지 확보가 문제였다. 이 종합 스포츠타운에는 강화군에서 시공하는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을 비롯, SK에서 추진한 야구장 2면과 실내연습장 및 전용숙소가 들어서기로 계획됐다. 그러나 3만5000평 가까이의 대규모 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근방에 사유지가 많아 토지 수용에 애를 먹은 까닭이다. 조상 대대로 살았던 터전을 스포츠타운 건립을 위해 선뜻 내놓을 이는 많지 않았다. 난관이었다.
그 때 등장한 빛이 김성수 주교였다. 강화도 출신이자 대한성공회 대주교로 성공회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김 주교는 이런 사정을 전해 듣고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선산을 스포츠타운 부지로 내놓았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김 주교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 8일 기공식에서 유천호 군수와 임원일 대표이사가 김 주교에 대해 거듭 감사함을 표현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8일 기공식에 참석한 김 주교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오히려 “좋은 일을 위해 한 것이 아닌가. (선산을 물려주신) 부친께서도 하늘에서 다 이해를 하시리라 믿는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평소 자신의 뿌리인 강화도에 대한 애착이 강한 김 주교는 “강화군민들을 위한 일이다. 강화군민들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봉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자신을 낮췄다.
이처럼 개인적인 욕심은 없는 김 주교지만 하나의 소박한 바람은 있었다. 이 스포츠타운 건설이 ‘식구’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물론 ‘식구’가 김 주교의 가족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김 주교가 촌장으로 있는 장애인재활센터 ‘우리마을’ 식구들에게 이 스포츠타운에서 뛸 SK 선수들이 하나의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70년대부터 장애인 교육과 처우 개선에 힘써온 김 주교는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장애인 봉사 단체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장애인 재활·복지 사업을 하는 비영리공익단체 ‘푸르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며 사회의 모범이 되고 있다. SK의 드림파크가 들어설 부지 바로 옆에는 지적장애인들의 소중한 쉼터가 있기도 하다. 김 주교는 부지 건너편을 가리키며 “한 번 가보라. 정말 집이 예쁘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김 주교는 “사실 지적장애인들은 특성상 대인관계가 그다지 원만하지 않다. 그래서 항상 외롭다”라고 했다.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는 그들에게 친구나 우상을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김 주교도 이런 현실을 지적하면서 “야구선수들은 힘이 넘치지 않는가. 그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우리 식구들이 밝음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야구, 그리고 스포츠가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혀줄 수 있다는 확신이 가득 찬 목소리였다.
물론 이곳은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선수들이 자주 찾는 곳은 아닐 것이다. 주로 9개 혹은 10개 구단의 2군 선수들이 더 밝은 미래를 위해 땀을 흘리는 곳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모습이 설사 초라하더라도 이를 지켜보면서 힘을 찾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침 이날 기공식을 찾은 50여명의 지적장애인들의 기대 섞인 표정에도 보답하는 일이다. 야구를 통해 세상을 밝히는 것은 비단 만원관중 앞에서 뛰는 스타 선수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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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열린 기공식에서 축사를 하는 김성수 주교. 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