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베일을 벗은 SBS 새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 극본 최정미, 연출 부성철)가 시대를 뛰어넘는 조선판 패션디자이너라는 설정으로 트렌디 사극의 가능성을 열었다.
‘장옥정’은 이날 방송에서 주인공 옥정(김태희 분)이 부용정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고관대작들의 환심을 사는 모습을 그리며 캐릭터의 롤을 설명했다. 타고난 손재주와 심미안으로 화려한 의복을 짓는 옥정은 그 시대의 트렌디세터였고, 이를 통해 앞으로 목숨을 걸 사랑을 나눌 이순(유아인 분)과도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옥정이 패션디자이너라는 설정이 중요한 건 이 같은 역할이 그가 처한 강력한 갈등의 요인인 신분격차를 뛰어넘을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천출인 옥정은 아버지의 배려로 면천됐으나 조선을 지배하는 신분제도에 의해 당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천민이라는 시선을 벗어날 수 없었고, 옥정은 옷을 짓는 행위로 이에 맞서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옥정의 힘겨운 싸움은 이날 방송에서 절반 가량의 분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대목이자 ‘장옥정’이라는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갈등의 요인이기도 했다. 옥정의 당숙으로 거부인 장현(성동일 분)은 앞으로 옥정에게 펼쳐질 파란만장한 인생을 배후 조정하는 인물로, 그 원인은 신분제도에 있었다. 중인신분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양반의 권세를 뛰어넘을 수 없었고, 이 같은 제도에 뼛속까지 원한을 느끼며 이를 바꿔보겠다는 욕망을 품으며 ‘장옥정’의 스토리는 시작될 수 있었다. 결국 ‘장옥정’음 움직이는 동력은 신분제도의 굴레에 갇힌 인물들의 극복 의지였다.
그리고 이 같은 극복 의지는 조선판 패션디자이너가 된 옥정을 통해 표현되며 극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에 트렌디한 느낌까지 가미돼 ‘장옥정’을 기존 사극 보다 화려하고 현대적 감각이 느껴지게 하는 성과를 냈다. 첫 시퀀스에서 등장한 부용정 연회 장면은 현대의 패션쇼를 연상케 하며 화려한 색감으로 시선을 자극했다. 이는 '장옥정'에 트렌디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옥정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와 더불어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지닌 캐릭터를 단박에 설명하는 순간이었다.
배우들의 호연 또한 ‘장옥정’에 대한 기대를 높인 대목이었다. 첫 사극 연기에 도전하는 배우 김태희는 신분의 제약을 지닌 장옥정 캐릭터의 한계와 이를 넘어서는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단단함이 느껴지는 표정 연기로 드러냈으며, 이순 역의 배우 유아인은 낮고 힘이 느껴지는 대사 전달을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군왕 캐릭터를 호연으로 펼쳐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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