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TV] '장옥정' 패션디자이너 설정, 이유 있었다
OSEN 전선하 기자
발행 2013.04.10 07: 40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 극본 최정미, 연출 부성철)에서 주인공 옥정이 패션디자이너로 설정됨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를 지배한 엄격한 신분제도의 굴레를 뛰어넘고자 하는 옥정의 의지와 염원이 의복을 통해 표현된 것이었다. 옥정의 꿈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이 같은 의미가 드러난 건 ‘장옥정’ 지난 9일 방송을 통해서였다. 이날 ‘장옥정’에서는 옥정(강민아/김태희)이 어린시절 부용정에서 자라며 패션디자이너의 꿈에 이제 막 눈을 뜨는 과정과 함께, 훗날 목숨을 건 사랑을 나눌 이순(채상우/유아인)과 혼인을 약속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장옥정’은 첫 방송을 통해 극의 핵심 갈등으로 신분제도와 그로 인한 억압의 정서가 인물들을 움직이는 동력임을 확실히 한 가운데, 2회 방송에서 이를 좀 더 구체화시켰다. 옥정은 이순에게 천한 신분을 씻게 해줄 옷을 입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내며 자신이 옷을 짓는 이유가 신분극복 의지에 있음을 드러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각고의 노력 끝에 옥정 자신은 가까스로 면천될 수 있었지만 천민인 부모와는 사별과 생이별을 해야 했고, 어린 나이에도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린 분노감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문제는 이순이었다. 이순은 옥정에게 미천한 신분이 되지 않는 옷을 구해주겠다며 그 방도로 “나의 빈이 돼라”고 말한다. 장차 조선의 지존이 될 주인공으로, 왕의 여자가 된다면 신분의 굴레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당대 법도를 알기에 뱉은 이순의 혼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자체로 옥정에겐 이미 비극이다. 신분제도에 불합리함을 느낀 당사자 스스로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타인에 의해서만 실현이 가능한 일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순과 같은 장차 지존이 될 이가 아니고서는 당대 사회에서 이에 대한 실현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역사를 통해 장옥정의 결말을 미리 아는 상황에서 “내가 너의 옷이 돼주겠다는”는 이순의 달콤한 프러포즈는 결코 로맨틱한 장면일 수 없다. 옥정은 장차 궁에 들어가 왕의 여자가 되지만 정쟁 끝에 끝내 사약을 받고, 이순이 아니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탁월한 재능과 심미안으로도 이룰 수 없는 옥정의 패션디자이너로서의 분주한 움직임이 서글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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