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구(23, 넥센)은 선천적으로 복을 가지고 태어난 투수다. 좌완으로서 140㎞대 중반의 빠르고 위력 있는 직구를 던질 수 있다는 재능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항상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선보여 팬들을 아쉽게 하기도 했다. 잘 던지는 날은 세간의 주목을 끌 정도로 내용이 좋았으나 그 반대의 날에는 다른 방식으로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경기마다, 혹은 경기 중에도 기복이 있었다. 신인 때는 면죄부라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감은 점차 조급함으로 바뀌었다. 강윤구에게 많은 공을 들인 넥센 코칭스태프도 애가 탔다.
올해도 스프링캠프 때 또 한 번의 변신 시도가 있었다. 이강철 투수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강윤구에 달라붙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넥센은 든든한 두 외국인 투수(나이트, 밴헤켄)에 비해 국내 선발진이 다소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서 왼손의 희소가치가 있는 강윤구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한편으로는 팀의 미래이기도 했다. 제구는 물론 투구 템포와 타자를 상대하는 방식까지 전방위적인 수술에 들어간 이유다.

하지만 첫 경기에서는 부진했다. 지난 2일 목동 LG전에 선발 출격했으나 2⅔이닝 동안 7피안타(1피홈런) 4볼넷 2폭투를 내준 끝에 5실점(4자책점)했다. 패전, 그것도 내용이 좋지 않은 패전이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이에 대해 “캠프 때부터 많은 것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투수다. 그러나 그날(2일)은 옛날로 잠깐 돌아갔다. 시범경기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생각이 너무 많아 템포가 늦었다”고 지적했다.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염 감독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염 감독은 “그래도 강윤구가 젊은 투수들 중에서는 가장 변신 속도가 빠른 선수”라고 했다. 강윤구도 이 믿음에 보답했다. 강윤구는 11일 문학 SK전에 선발 등판해 6⅔이닝 동안 99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 9탈삼진 2실점(1자책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첫 승을 따냈다. 넥센은 강윤구의 호투를 앞세워 4-3으로 이기고 2연패에서 탈출했다.
좋을 때의 모습이 나온 강윤구였다. 빠른 직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를 앞세워 SK 타자들을 힘으로 눌렀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구위를 믿었다. 그러다보니 템포도 빨라졌다. 벤치도 이런 강윤구에 힘을 실어줬다. 7회 1사 1,2루의 위기 상황에 몰렸음에도 넥센은 강윤구를 교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독였다. 염 감독은 경기 후 “이런 위기 상황을 이겨내라는 의미였다”고 했다. 넥센이 강윤구를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강윤구는 경기 후 “제구가 어느 정도 잡히는 것 같아서 기쁘고 직구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라고 의의를 두면서 “상대가 SK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직구와 슬라이더 조합이 좋다보니 삼진을 많이 잡은 것 같다”고 했다.
첫 승이 기쁠 법도 하지만 강윤구의 눈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윤구는 “지난 첫 등판은 부진했는데 당시는 시범경기라고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첫 등판의 좋지 않았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우겠다는 의미다. “오늘 경기가 나의 첫 등판이라고 생각하겠다”고 밝힌 강윤구는 이어 “앞으로도 연습하던 대로 하겠다”라고 했다. 강윤구의 변신에 공을 들인 넥센 벤치를 흡족하게 할 만한 마지막 소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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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