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시즌 신생 구단 NC 다이노스의 7연패 뒤 첫 승은 의미상으로나 숫자상으로나 여러 번의 반복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 재도전에 나서는 모습을 말하는 대표적인 사자성어, ‘칠전팔기(七顚八起)’에 딱 들어맞는 승리였다.
매번 무언가 이루어질 듯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주저앉기를 반복했던 NC의 타선과 수비력은 적어도 4월 11일 잠실 LG전에서 만큼은 달라져 있었다. 필요할 때 득점타가 터져 나왔고 무더기 실책으로 자멸하던 하루 이틀 전의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앞서 연달아 나섰던 아담, 찰리, 에릭 등 수준급 외국인 선발투수들이 팀의 연패를 끊어내지 못하며 NC의 연패기간은 얼마간 더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였는데, 타 팀에서 버려진(?) 국내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다.

승리투수에 이재학, 결승타는 차화준, 결승득점은 김종호, 중간계투는 문현정과 송신영 그리고 마무리는 고창성이었다.
NC의 창단 첫 승리투수로 야구역사에 영원히 남게 된 이재학은 2010년 두산에 입단(2라운드 10순위)했다가 2011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NC로 옮겨온 선수이다. NC가 프로리그에 처음 참가한 지난해(2012년) 이재학은 퓨처스리그 에서 다승과 방어율, 탈삼진 등 주요 투수부문 타이틀을 독식하며 그 존재감을 꽤 알렸지만, 두산에 몸담고 있었을 당시만 해도 선발로 나와 승리투수가 된 기억은 전혀 없었다.
2010년 6월 15일 잠실 LG전에서 네 번째 구원투수로 나와 2.1이닝을 던지고 난타전(14-9 두산 승리) 속 구원승을 챙긴 것이 그의 유일한 1승이었다.
그리고 선제 결승타점을 올린 차화준은 2005년 현대에 입단(2차 1라운드 8순위)한 이후 2012년 2대 1 트레이드(넥센 임창민+차화준 대 NC 김태형)를 통해 NC로 들어온 선수다.
NC로선 차화준이 사상 첫 트레이드에 의한 영입선수인 셈. 현대에 입단한 후 가능성 있는 내야수로 주목을 받아 2006년 시즌 100경기 이상 출장하기도 했으나, 군 복무 후 다른 선수들에 밀려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져 가던 중, 중요한 순간에 힘을 보탰다.
또한 첫 홀드를 기록한 좌완 문현정은 2002년 KIA에서 데뷔(2차 2라운드 13순위)한 이후 2011년 삼성을 잠시 거쳐 이재학과 마찬가지로 2차 드래프트를 통해 NC행이 결정된 선수다.
2007~2008년 KIA의 좌완 불펜투수로 자주 마운드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2010년을 끝으로 방출되었으며, 좌완투수 보강이 절실했던 삼성의 선택을 받아 2011년 2경기 마운드에 잠깐 선 것이 전부였다. 문현정의 통산기록은 2승 6홀드.
이외에 빠른 발을 무기로 톱타자로 나와 도루와 결승득점을 뽑아낸 김종호(전 삼성)와 두 번이나 적시안타로 주자를 득점권에 몰아준 조영훈(전 KIA), 중간계투와 마무리를 책임진 송신영(한화)과 고창성(두산) 등도 지난해 기존 각 구단의 보호선수 20인 명단 안에 들지 못해 특별지명의 형식을 빌어 NC로 강제 징집(?)된 선수들이었다. 다시 말해 NC의 첫 승을 일군 선수들 개개인 역시 칠전팔기의 인생역정을 살아온 선수들이었던 것이다.
과거 신생 팀의 자격으로 1군 무대에 처음 섰던 1986년(빙그레 이글스)과 1991년(쌍방울 레이더스), 이들 두 팀들의 프로 첫 승 접근 과정은 돌이켜보면 지금의 NC와는 내용면에서 많이 달랐다.
기존 6개 구단들에게서 서너 명의 선수를 트레이드 형식으로 지원받았던 빙그레는 기대만큼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김성갑, 김한근, 유승안, 김우열, 장명부 등 지명도 있던 노장 선수들을 다수 영입할 수 있었고, 재일동포 고원부 외에도 투수 쪽에서는 이상군과 한희민을, 타자로는 이강돈, 전대영, 강정길, 김상국 등의 우수한 신인들을 대거 맞아들여 나름대로 일정 전력을 구축하고 나선 상황이었다.
또한 1991년 쌍방울 역시 2년 연속 특별지명을 통해 10명씩, 총 20명의 신인 선수들을 무더기로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준 덕분에 특급 신인 조규제를 비롯, 김원형, 강길룡, 김기태 등 많은 우수자원을 선점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덕분에 빙그레는 1군 데뷔 4경기째 만인 4월 5일 인천구장서 청보를 상대로 한희민의 역투에 힘입어 5-0 완봉승으로 역사적인 첫 승을 기록할 수 있었고, 쌍방울은 한술 더 떠 아예 1군 데뷔전이자 개막전인 4월 5일대전구장 빙그레전에서 조규제를 선발로 앞세워 11-0의 대승으로 첫 승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었다.
물론 NC 역시 외국인 선수 보유수 확대라든가 2차 드래프트 실시, 보호선수 외 특별지명, 신인선수 우선지명 등 다방면으로 전력을 보강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고 있긴 하지만, 신생 팀들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궤도에 오른 기존 팀들의 탄탄한 전력은 단시일에 넘기 힘든 장벽과도 같은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이제 NC가 목말랐던 첫 승의 뜻을 이루었다 해서 앞으로 팀 전력이나 승률이 지금까지 보다 눈에 띄게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제 시작이지만 남은 여정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가다 보면 또 긴 연패의 터널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야구는 단편적 기술보다 경험이 우선하는 스포츠라고 했다. 이겨보았다는 기억, 해냈다는 자부심,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경험과 맞물려 갈수록 안정된 NC 다이노스를 만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 NC는 강팀이 되기 위한 과정, 가을 수확기가 아닌 씨앗과 모종을 심는 봄 속을 걷고 있다.
NC의 첫 승을 넘어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향후 2년 뒤인 2015년, 잉태중인 제10구단 KT의 시즌 첫 승은 또 누구에 의해, 어떤 사연을 안고, 얼마만한 산고를 거쳐 이 세상에 탄생될 것인지가.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NC 다이노스의 역사적인 첫 승과 첫 홀드 기념 사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