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는 박복했던 선발 투수였다. 호투를 올리면 타선이 터지지 않아 승리를 따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타선이 터졌다 하면 자신이 그르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시작이 좋다. ‘김지토’ 김상현(33, 두산 베어스)이 2013시즌 초반 다승 선두로 나서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고 있다.
김상현은 13일 잠실 롯데전에 선발로 나서 5이닝 동안 사사구 없이 5피안타(탈삼진 3개)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팀은 7-2로 승리했고 계투 투입 후 3일 만의 선발 등판을 순조롭게 마친 김상현은 시즌 3승(무패, 13일 현재)째를 기록하며 다승 선두 자리를 지켰다. 말 그대로 시작이 좋다.
2001년 2년제 제주 한라대를 졸업하고 두산에 2차 1라운드로 입단한 김상현은 2007시즌부터 1군 마운드에 힘을 보태기 시작한 우완. 2008시즌에는 선발-계투를 오가며 6승 2패 평균자책점 2.44의 호성적을 올렸고 2009년에도 7승을 올리며 전천후 투수 노릇을 했던 김상현이다.

그런데 김상현의 선발 성적은 경기 내용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그리 재미를 못 본 케이스였다. 2007년 김상현의 선발 성적은 9경기 6패 3.76이었다. 나쁘지 않은 평균자책점이었으나 단 1승도 없었다. 경기 당 타선 지원이 2.47점 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 계투-선발을 종횡무진하며 44경기 6승 2패 평균자책점 2.40으로 프로 데뷔 이래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던 김상현은 2009시즌 4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즌 초반 그는 팀 내 가장 경기 내용이 좋은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5월까지 평균자책점 3.60으로 10경기 넘게 나서고도 2승(2패)에 그쳤다. 그해 4월 16일 잠실 히어로즈전에서는 9이닝 동안 98개의 공을 던지며 6피안타 5탈삼진 1실점으로 완투를 하고도 팀이 무득점에 그쳐 완투패를 떠안기도 했다. 2009년 김상현의 선발 등판 당시 경기 당 타선 지원은 1.20점에 그쳤다. 말 그대로 박복했다.
지난 3년 간의 야구 인생도 운이 없었다. 2010년 전지훈련을 마친 뒤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한 김상현은 연습경기 도중 정강이를 맞고 재활조로 편성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지방종 판정을 받으며 일찌감치 시즌 아웃되었다. 2011시즌에는 초반 잦은 계투 등판으로 부하가 걸렸고 후반기 선발로 나서다 팔꿈치 부상으로 일찍 시즌을 접었다.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지난해에는 아버지의 별세로 심적으로도 편치 않았던 김상현이다.
그러나 2013시즌 초반은 호투와 함께 운도 따르고 있다. 3월 31일 대구 삼성전에서 3이닝 퍼펙트투로 마수걸이 승리를 따낸 김상현은 4일 잠실 SK전서 5이닝 4피안타 1실점 호투에도 선발승을 거두지 못했으나 9일 광주 KIA전에서는 계투로 나서 공 두 개를 던지고 시즌 2승 째를 따냈다.
이튿날에는 아웃카운트 없이 1피안타 2실점 1자책으로 패전 위기에 몰렸으나 9회초 양의지의 동점 솔로포 덕택에 패전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13일 경기에서는 팀이 1회말부터 4점을 지원했다. 수 년간 박복했던 운이 적금 만기일처럼 흘러나오는 중이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은 사실 반어법 제목이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인 인력거꾼 김 첨지가 아내를 잃은 가장 슬픈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상현의 2013버전 운수 좋은 날은 다르다. 팬들로부터 잘 던지고도 승리를 따내지 못하는 ‘박복 지토’로 불리던 김상현은 올 시즌 초 ‘럭키 가이’ 중 한 명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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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