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갑' 계약직 미스김의 활약상이 연일 화제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시간을 칼 같이 지키고 계약서에 명기된 조항대로만 일을 하고 추가 업무가 있을 시에는 어마어마한 시간 외 수당도 챙긴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괴롭히는 상사에게 "이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라며 당당히 맞선다. 그래도 안 잘린다.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 속 김혜수의 캐릭터다. 청년 실업 시대, 삼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와 88만원 세대의 애환이 깊어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미스김' 김혜수 캐릭터는 그저 판타지다. 오늘도 비정규직, 계약직으로라도 직장에 발을 붙이기 위해 용쓰는 구직자들이 넘쳐나고 하루하루 파리 목숨 같은 회사 생활을 근근이 버티는 계약직들이 널린 대한민국에서 상사에게 할 말 다 하고 계약된 업무만 처리하고 '칼퇴근'이 자연스런 미스김(김혜수 분)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히로인이다.
'직장의 신'이 월화극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이것이 비록 판타지 같은 설정과 배경에서 탄생한 얘기일지라도 그만큼 청년실업자, 혹은 계약직, 또 대다수 평범한 직장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방송 후 시청자 게시판과 각종 SNS 등에는 미스김의 캐릭터에 대한 호평부터 전체 스토리에 대한 공감과 응원이 봇물을 이룬다. 이제 갓 4회가 전파를 탄 상황이지만 '직장의 신' 때문에 월요병이 해소됐다는 열혈 마니아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물론 미스김이 이토록 말 안 되는 '슈퍼갑' 행세를 할 수 있는 명분(?)은 있다. 그는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조리사 자격증, 중장비 기사 자격증에 목욕관리사 자격증 등 무려 124가지 자격증을 가진 인재다. 일반 문서작업은 물론 화장실 청소부터 사무기기 수리, 나아가 '간장게장 쇼' 같은 이벤트까지도 척척 해내는 괴물이다. 혼자서 일당백 몫을 해내는 이 기막힌 업무 능력은 미스김의 슈퍼갑 노릇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삼포세대,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많은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는다. '나도 점심시간인데, 오늘도 대충 떼우고 일이나..'하는 직장인들 입장에서는 감히 상사에게 꿈도 못 꾸는 바른 말을 서슴지 않고, 제 할 일만 완벽히 해내면 사생활 터치도 받지 않고, 3개월 계약 기간이 끝나면 홀연히 해외로 떠나는 미스김의 패기(?)가 부럽기도 하다.
국내최초 자발적 비정규직이란 '미스김'이 과연 어떤 사연 때문에 정규직 아닌 계약직 신세를 자처한 건지, 아직 그 미스터리가 밝혀지지 않은 탓에 더욱 흥미롭다.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리메이크한 만큼 현재까진 원작의 뼈대에 상당히 충실한 모습. 하지만 디테일이나 결말에 있어 어떤 변수가 더해질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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