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사랑할 때' 그들의 사랑은 아프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4.18 07: 33

[유진모의 테마토크] 사랑이라는 게 의지대로 희망대로 순조롭게 흘러만 가준다면 얼마나 놓을까마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헤어진 연인을 상대로 끔찍한 칼부림을 부렸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하고 사랑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MBC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의 사랑은 어쩐지 위험하고 서글프고 매우 아프다.
이 사랑은 서미도(신세경)를 동시에 사랑하는 한태상(송승헌)과 이재희(연우진)의 향후 스토리 전개가 기둥축이다. 여기에 한태상의 예전 보스 김사장(이성민)의 여자였던 백성주(채정안)의 한태상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 있고, 또 백성주를 향한 김사장의 친구 구용갑(이창훈)의 물불 안 가리는 무모한 사랑이 있다.
미도를 향한 태상과 재희의 연적 관계도는 이미 처음부터 그려졌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미도는 정부의 구호양곡을 받으러 갔다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의 카메라를 피해 도망가고, 그런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재희는 미도네 집앞으로 배당된 쌀 두 포대를 들고 달려와 미도의 집까지 옮겨주며 인연을 맺었다. 최소한 재희가 첫눈에 미도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만큼은 사실이다.

태상은 미도의 아버지 서경욱(강신일)에게 빚을 받으러 왔다가 우연히 미도를 보게 됐다. 그리곤 폭력을 휘두르는 부하들을 철수시키고 채무내용 중에 이자를 탕감해준 것도 모자라 7년간 미도의 대학 학비를 넉넉하게 대줬다.
그 7년의 시간 동안 태상은 한결같이 미도를 사랑했고 미도만 생각했고 오로지 미도에 대한 감정만 키웠다.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마는 미도는 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특히 태상에게는 각별하다.
태상은 17살 때 바람난 어머니가 사채빚을 끌어다쓰고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가는 바람에 아버지가 죽고 천애고아가 된 인물. 남은 것은 독기 밖에 없는 그는 사채업 깡패들에게 무모하게 대들었고 이를 유심하게 지켜본 보스 김사장의 눈에 들어 그의 밑에서 깡패로 자랐다.
독하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한 그의 삶 속에 사랑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어려서 받은 상처의 트라우마 속에 갇혀 사는 이 차갑고 냉철하기 그지 없는 남자는 그 흔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뛰어난 머리로 사채업계에서 승승장구한다.
그러던 그의 마음 속에 어느날 미도라는 한 마리 나비가 날아온다. 자신의 부하들에게 무모하게 대드는 미도를 보며 그는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그리고 자신과는 달리 학업성적이 뛰어나고 야무지고 예쁜 이 나이 어린 여자에게 첫눈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는 대학 학비를 대주며 키다리 아저씨로 뒤에서 묵묵히 지켜봤다.
성주가 태상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질투한 김사장은 부하들 앞에서 태상을 모욕하고 태상은 그 길로 김사장의 곁을 떠난다. 이에 김사장은 태상에게 복수할 양으로 미도를 잡아오고 이를 본 태상은 김사장에게 대들다 칼을 맞는다. 그때 태상의 오른팔 이창희(김성오)가 나타나 김사장을 죽이고 태상을 구출한다. 그 뒤 창희는 감옥에 들어간다.
창희는 재희의 형으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재희를 아끼고 사랑한다. 의리로 태상이라면 우애로는 재희다. 더구나 재희는 자신의 친동생이니 각별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사이 태상은 골든트리라는 어엿한 회사를 설립하고 그 자신은 국제적인 사업가로 크게 성장했다. 그렇게 만난 미도를 그는 골든트리에 입사시킨다.
어느날 태상은 미도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괌으로 출장을 보내는데 거기서 미도는 재희와 재회한다. 그 짧은 3일 동안 재희는 미도에게 푹 빠지고 귀국한 이후 재희네 책방 앞에서 서성댄다.
태상은 미도와 결혼하기 위해 정공법을 택한다. 정식으로 미도의 집을 방문해 식구들과 저녁식사 자리를 가진 것이다. 엄마 최선애(오영실)와 남동생 미준(JB)은 태상을 반기지만 아버지는 못마땅해 대놓고 12살 나이차이를 걸고 넘어진다.
하지만 미도는 당당하다. 15살 차이도 문제 없다고 큰소리 친다.
과연 미도의 마음 속에는 뭣이 담겼을까?
미도는 찢어지게 가난한 자신의 형편이 싫다. 그녀는 일단 태상의 배경이 좋다. 성주의 한정판 명품백에 콧방귀를 끼지만 그녀도 그런 것을 들고 다니고 싶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싶으며 화려한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런 그녀에게 태상의 등장은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다. 욕망이 큰 속물근성의 미도에게 있어서 미도를 무작정 좋아하는 순정파 마초 태상은 키다리 아저씨고 수호천사다.
미도는 자신의 속물근성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 속에 갑자기 나타난 재희의 젊음과 순수함에 일시적으로 흔들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내 그녀는 평정심을 되찾고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이리 저리 비교를 해봐도 태상의 조건에 맞설 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는 재희다.
그래서 태상과 재희의 사랑은 아프고 서글프다. 향후 미도는 재희 때문에 흔들릴 수 있다. 질풍노도같은 거친 삶을 살아왔지만 미도 단 한 사람 앞에서만큼은 한 없이 순수해지는 태상은 그러나 미도의 약간의 변심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아픔과 상처에 크게 다칠 것이다.
재희 역시 자신의 뒷바라지를 해준 태상과 연적 관계에 놓이게 됐을 때 가치관의 혼돈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 있다. 은인이냐, 연인이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나약한 그가 착지할 기착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런 선택 뒤의 태상과의 대척 혹은 대립관계가 만들어낼 비극은 두 남자의 인생에 헤어나올 수 없는 쓰나미가 될 것이다.
팜므 파탈같은 성주와 야비한 악당 용갑의 감정도 사랑은 사랑이다. 용갑은 오래 전 김사장이 성주와 사귀기 전부터 성주를 사랑했다. 김사장이 죽고 난 뒤 성주가 태상을 향해 노골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며 적극적으로 구애행각을 펼치고 있음에도 그는 오매불망 그녀를 바라보는 해바라기다. 그는 성주가 자신을 벌레 보듯 취급하자 '가질 수 없다면 죽여서라도 차지하겠다'고 서늘한 자신만의 사랑의 표현방법을 내뱉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서글픈 처지는 성주도 마찬가지. 그는 김사장의 여자였던 시절부터 태상을 사랑했다. 얼마나 크게 얼마나 오랫동안 그녀의 마음이 아팠을까는 짐작이 가고도 남을 정도로 그 고통은 넓고 깊다.
김사장이 죽은 다음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대놓고 표현할 수 있지만 정작 사랑의 대상인 태상은 얼음처럼 차갑기만 하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사랑은 함께 달아올라야 불이 붙는다. 일방적인 한쪽만의 감정으로는 사랑의 완성은 없다. 아픔만 있을 뿐이다.
'남자가 사랑할 때' 속의 남자가 사랑할 때의 감정은 공통적으로 '물 불 안 가린다'다. 그리고 '아무 것도 뵈는 게 없다'다. 태상 재희 용갑의 사랑은 목마르고 간절하고 애처롭지만 그 사랑의 행복한 완성은 멀게만 보인다. 왜냐면 여자의 감정은 남자처럼 단순하지 않고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고 여자는 불평한다. 맞긴 맞지만 그만큼 남자는 단순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외모만 보는 게 아니라 조건까지 꼼꼼하게 따진다.
태상은 비록 깡패 출신에 무식하지만 잘 생긴 외모에 현재 돈 많은 성공한 사업가다. 과거가 무슨 상관이랴, 여자 앞에서 한 없이 착해지고 헌신적인 잘 생긴 남자가 돈까지 많은데. 여자들이 싫어할 리 없다.
인간 자체만 놓고 볼 때야 나이 어리고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선민 출신의 재희가 당연히 신랑감으로 더 낫다. 하지만 그는 태상에게 절대 이길 수 없는 것 하나가 있다. 돈이다.
성주가 태상을 좋아하는 것은 고독한 늑대같은 그의 그늘에서 진한 남자 냄새와 페이소스를 느껴서다. 하지만 현재 태상이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그만을 좇아다녔을까? 태상과 용갑을 비교할 때 두 사람이 모두 부자인 것은 맞지만 태상이 더 젊고 인간적이고 착하다.
본성이 착한 남자든, 야비한 악인이든, 곱게 자란 학구파든 남자가 사랑할 땐 여자의 냉정함 앞에서 한 없이 나약해지는가 보다. 최소한 '남자가 사랑할 때' 속 남자들의 사랑은 아프고 힘들기만 하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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