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진출 2년차를 맞는 이대호(31, 오릭스 버팔로스)가 리그 최고의 타자로서의 위용을 선보이고 있다. 이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들도 이대호와의 정면 승부를 꺼릴 정도다. 위압감이 높아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대호는 18일 현재 퍼시픽리그 타격 전 분야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타율(.362)은 메기(라쿠텐·.411)에 이어 리그 2위다. 안타(25개)와 장타율(.580)은 당당히 리그 1위고 홈런(3개·공동 3위), 출루율(.408·6위), 타점(12개·공동 5위) 등에서도 고루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그 와중에 삼진은 6개 밖에 허용하지 않았고 병살타도 하나뿐이다. 누가 뭐래도 순도 높은 활약이다.
이런 이대호의 활약이 계속되자 상대 투수들도 극단적인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17일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는 상징적이었다. 이날 세이부 선발투수는 와쿠이 히데아키(27)이었다. 와쿠이는 세이부를 넘어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우완 정통파 중 하나다. 2010년에는 14승을 거뒀고 마무리 보직을 맡았던 지난해에는 30세이브를 올렸다. 그러나 이런 와쿠이도 이대호와의 승부는 까다로웠다. 잡겠다는 생각보다는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읽히는 투구 내용이었다.

1회 2사 2루에서 이대호를 상대한 와쿠이는 철저히 바깥쪽 승부를 했다. 제구력이 좋은 투수라 큰 티가 나지는 않았을 뿐 홈 플레이트 바깥쪽으로 형성되는 직구와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이대호의 방망이를 시험했다. 풀카운트에서도 몸쪽 승부보다는 바깥쪽 슬라이더를 택했다. 설사 볼넷을 주더라도 큰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이대호의 선구안은 살아있었고 이 공에 반응하지 않은 채 걸어 나갔다.
4회 두 번째 타석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대호와 상대했다. 선두타자 이대호의 출루를 막아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바깥쪽 직구와 슬라이더가 주종이었고 4구째 던진 몸쪽 커브가 비교적 높게 형성되며 이대호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했다. 결국 이대호의 이 안타는 T-오카다의 2루타, 그리고 고토의 2타점 적시타로 연결되며 오릭스의 역전에 발판이 됐다.
최근 이대호를 상대하는 투수들도 거의 대부분 이런 패턴이다. 몸쪽 승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 가운데로 몰리면 큰 것을 허용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실제 이대호는 어려운 공을 치기보다는 실투를 놓치지 않는 타격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큰 스윙을 하는 4번 타자치고는 삼진도 적은 편이다. 자신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이대호다.
욕심을 내지 않는 타격은 한 번쯤은 찾아올 슬럼프가 길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투수들이 까다로운 승부를 하기에 칠 기회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부진에 빠져 있었던 T-오카다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개막 이후부터 괜찮은 타격감인 발디리스의 존재까지 합치면 이대호를 마냥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해를 통해 얻은 경험과 한층 커진 위압감으로 무장한 이대호가 최고의 성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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