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쉬라니깐 왜 다들 나와 있는 거야?”
19일 문학 SK전을 앞두고 덕아웃을 찾은 선동렬 KIA 감독은 그라운드에 모인 선수들을 보더니 웃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선 감독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훈련 시간을 최대한 짧게 가져가라는 주문을 내린 터였다. 18일 광주 LG전에서 장장 5시간의 혈투를 벌인 뒤 새벽 4시에야 인천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피로감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훈련에 임한 것이다. 선 감독의 어투는 흐뭇함이 묻어나왔다.
선 감독은 “워밍업 정도만 하고 수비 연습만 간단히 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 감독이 덕아웃을 뜬 후에도 KIA의 몇몇 선수들은 지시에도 없었던 타격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 중 마지막까지 배팅 게이지를 지킨 선수가 눈에 띄었다. 동료들도 거의 없는 곳에서 묵묵히 방망이를 돌리고 있었다. 최희섭(34)이 주인공이었다.

최희섭은 주축 선수다. 방망이 몇 번을 돌리는 것보다는 경기를 준비할 시간이 더 중요했을지 모른다. 게다가 최근 2경기 연속 홈런포를 날리는 등 타격감이 절정에 올라 있었다. 타격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 할 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최희섭은 신중하게 연습에 임했다. 그 결과였을까. 최희섭은 19일 경기에서 1회 SK 선발 여건욱의 체인지업을 걷어 올려 우월 3점 홈런을 터뜨렸다. 3경기 연속 홈런포이자 이날의 결승타였다.
최희섭은 물오른 방망이로 KIA 타선을 이끌고 있다. 최근 4경기에서 타율 5할(14타수 7안타)에 3홈런 9타점이다. 특히 17일 광주 LG전에서 마수걸이 홈런을 쏘아 올린 이후 3경기 연속 홈런을 쳐냈다. 잠시 떨어졌던 타율도 3할2푼1리까지 끌어올렸고 타점(14개)은 리그 공동 1위다. 더 고무적인 것은 몸 상태다. 최근 몇 년간 그를 괴롭혔던 부상 악령을 찾아볼 수 없다.
심리적인 안정도 찾았다. 매 시즌 부상으로 고전했던 최희섭은 몇몇 좋지 않은 일들로 위축되어 있었다. 2010년 4억 원이었던 연봉이 올해 1억5000만 원까지 깎이며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연봉협상에서 물러선 뒤 훈련에만 매진했다. 전지훈련부터 좋은 컨디션을 선보였고 그 감을 시즌 초반에도 이어가고 있다. 단순한 기록을 떠나 타구의 질이 좋아졌다는 게 KIA 관계자들의 평이다.
최희섭은 19일 경기 후 “그동안 너무 보여준 것이 없었다”라고 돌아봤다. 실제 2007년 KIA 입단 이후 최희섭이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킨 적은 많지 않았다. 냉정하게 따지면 2009년과 2010년 정도였다. 나머지 4년은 규정타석조차 채우지 못했다. 그런 최희섭이 자존심 회복을 위해 독기를 품었다. 최희섭은 “올해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라는 말로 자신의 의지를 대변했다. 2009년을 뛰어 넘는 생애 최고의 시즌을 향한 최희섭의 도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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