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라는 직업 만큼, 예능 프로그램에 적절치 않은 직업이 또 있을까. 직업적 특성상 특정 이미지가 굳어지게 되면 그에 상충하는 역할을 맡는 순간 알 수 없는 괴리감이 밀려와 극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배우들이 비슷한 배역을 연달아 맡지 않고, 꾸준히 연기변신을 시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예능 프로그램, 더군다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하다보면 싫든 좋든 캐릭터라는 게 자동적으로 입혀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굳어진 캐릭터는, 특정 이미지로 자리잡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실제 인물과 작품 속 캐릭터간 간극이 생겨나 몰임감을 낮춘다. 이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선 더욱 처절한 연기력이 요구되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MBC '나 혼자 산다'(연출 이지선)에 출연하는 이성재(43)는 이런 모든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배역과 실제 캐릭터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배우다.

금요일밤 방송되는 '나 혼자 산다'에서 이성재는 애견 에페에게 애정을 쏟는 아빠이자, 무지개 회원님들과 투닥거리며 장난치는 철 없는 형이자 동생이다. MBC 월화극 '구가의 서'에서 절대악역 조관웅 역을 맡아 연기하는 배우와 동일인물이라는 게 오히려 믿기 힘들 지경이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게시판 및 SNS 등을 통해 '이성재 화원과 조관웅이 동일인물이라니..' '이성재 회원님 같은 사람 좀 만나고 싶다' '인간적인 매력이 철철' 등의 글을 남기며 감탄을 쏟는다. 이성재에 대한 호감은 그야말로 현재 수직상승 중이다.
19일 방송된 '나 혼자 산다'에서 강아지 에페와 함께 애견 펜션에 놀러가는 이성재의 모습은 '딸 바보' 그자체 였다. 물에 빠진 에페에게 뛰어가 호들갑을 떨고, 뛰어오는 에페를 영상에 담기 위해 추한 포즈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동차 여행을 하는 에페를 위해 휴대용 물통을 준비하거나, 화장실 여부를 체크하는 것도 세심하게 신경쓰는 모습도 내비쳤다.
더불어 펜션을 예약하는 것부터 가는 길목에서 먹던 닭갈비 '먹방', 차안에서 가사 없이 "따리라링다링다라" 라고 부르던 '레미제라블' OST 등 모든 과정들을 의도치 않은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여태껏 예능프로그램을 출연하지 않고 어떻게 참았을지 궁금할 정도다.
무지개 회원님들과의 호흡에서 이런 웃음은 더욱 빛났다. 작품 속에서 풍겼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이 수도 없이 형동생 들에게 장난을 걸며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 냈기 때문. 서인국이 제안한 아파트 게임을 하며, 2연속 내기에 패해 밥값을 지불하고 뺨을 맞으면서도 시종 사람좋은 웃음만 쏟아냈다.
벌칙을 순식간에 영화 '친구'와 '공공의 적'의 명장면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명품배우' 김광규와 이성재의 호흡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다가도 순식간에 바닥을 구르며 격한 몸 개그로 이어지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나 혼자 산다'는 진행을 맡은 노홍철을 비롯해 혼자男 5인 김태원, 이성재, 김광규, 데프콘, 서인국이 홀로하는 생활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다큐 예능이다. 때문에 등장 캐릭터들의 매력이 시간이 지나 발현되고, 캐릭터들간 역할과 호흡이 어느 정도 자리매김하는 지금 순간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성재가 만들어내는 꾸밈없는 솔직한 웃음과 가식을 쫙 빼낸 담백한 웃음이야말로 최근 몇년간 지나친 억지 웃음 유발에 지치고, 염증이 났던 우리네가 진짜로 원했던 그것이 아닐까 싶다.
그에게 묻고 싶다. '이성재 회원님, 왜 진작 예능하지 않았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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