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의 서' 이승기-수지 매력만 있나? 연기력 甲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4.23 07: 57

[유진모의 테마토크] 가수가 배우를 병행하는 현상은 최근 연예계의 패러다임이다. 불과 10여년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가수가 노래만큼 정극연기에 전념하는 일은 금기사항이었다. 1970~80년대 일시적으로 톱가수가 탄생하면 히트곡을 제목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해당 가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지만 어느새 가수는 노래에만 전념하는 게 공식처럼 굳어졌다. 가수와 영화배우로 동시에 활동하는 홍콩 연예계와는 달리.
하지만 지금은 아이돌 가수로 데뷔해 성공한 뒤 배우를 겸업하는 게 교과서다. 제작자 측 입장에서는 아이돌의 안정된 인기도를 등에 업고 흥행의 기본을 안고 들어가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고 가수 입장에선 자신의 활동의 폭을 넓힘으로써 수입을 증대할 뿐만 아니라 성취감을 고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 연기자와 달리 나이 어린 가수 출신 연기자의 연기력은 항상 논란을 꼬리표처럼 몰고 다녔다. 아무리 전문 연기자라고 하더라도 경력이 일천한 신인은 연기력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연기보다 노래에 더욱 전념한 아이돌 출신 배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면에서 아이돌 가수 출신인 이승기와 배수지가 주연을 맡은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는 불안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작품 자체는 액션 멜로 판타지 코미디 등이 뒤섞인 종합선물세트같은 퓨전사극이라 흥행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주연배우 모두 연기보다는 노래를 잘 하고 노래를 더 많이 불러온 가수 출신이라는 핸디캡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얘기해 이승기와 배수지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는 절대 아니다. 그나마 이승기는 그동안 잠깐씩 연기를 해왔고 예능에도 출연해 연기감이 있지만 배수지는 영화 '건축학개론'이 전부다. 게다가 '건축학개론'은 배수지에게 그리 대단한 연기력을 요구한 작품이 아니었다. 고3인 배수지의 있는 그대로의 청순한 매력만 보여주면 되는 비교적 쉬운 카드였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연기력의 결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컨텐츠다. 연출자나 작가가 일일이 배우의 핸디캡을 손질해주기 힘든 매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이 드라마의 재미는 당연하고 염려됐던 이승기와 배수지의 연기력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특히 이승기는 역시 자기옷을 입은 듯 다소 허당기 넘치는 최강치를 아주 잘 소화해내고 있다.
재미와 배우들의 노력은 시청률이 보장한다. 첫 방송을 3위로 출발한 이 드라마는 단숨에 1위에 올라 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상태라면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1위 경쟁에 합류하기 절대적으로 어렵고 그나마 KBS2 '직장의 신'이 선전중이지만 '구가의 서'를 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직장의 신'은 주로 30~40대 직장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구가의 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기를 얻고 있으며 특히 충성도가 높은 10~20 연령층의 지지가 열화와 같다. 그 중심에 이승기와 배수지가 있다는 점에 대해 반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리산 수호신인 신수 구월령(최진혁)과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몰락한 집안의 여식 윤서화(이윤희)는 비극적인 운명으로 만나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세상에 반인반수의 아들 최강치(이승기)를 남긴다. 백년객관 관주 박무솔(엄효섭)의 손에 거둬져 자라 스무살을 코앞에 둔 강치는 박무솔의 딸 청초(이유비)를 남몰래 연모하지만 청초는 이미 높은 양반집 며느리로 간택된 상태.
이런 강치의 무례함을 눈치 챈 무솔의 아내(김희정)가 수하를 시켜 강치를 혼쭐낸 뒤 쫓아내지만 백년객관을 집어삼키려는 조관웅(이성재)이 식구들을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강치가 되돌아와 위기에서 구해준다.
그 과정에서 강치는 특수임무를 띠고 여수에 흘러들어온 담여울(배수지)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이승기의 연기는 허당 그 자체다. 그런데 그 허당기는 이미 '1박2일'에서 여실하게 보여준 터. 작가는 교묘하게도 강치에게 그 캐릭터를 불어넣어 이승기의 연기를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 훌륭한 연기를 구워내게 유도한다.
물론 처음 사극에 출연한 이승기의 표정과 목소리 톤이 전혀 사극답지 않다는 핸디캡은 눈엣가시다. 눈을 감고 이승기와 배수지의 대화를 듣다보면 이게 현대 로맨틱코미디인지, 사극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그럼에도 이승기와 배수지의 연기력에 대한 논란이 별로 크지 않은 것은 이 드라마가 애초부터 퓨전사극을 표방했기 때문이고 그만큼 두 사람의 연기력이 못봐줄 수준은 넘어섰다는 증거다.
 최강치는 천방지축 철부지로 그려진다. 신수의 피를 타고난 반인반수인지라 남다른 체력과 힘 그리고 무술실력을 지녔지만 행동거지는 좌충우돌이고 생각은 그리 깊지 못하고 짧기 그지 없다. 게다가 조금만 화가 나도 분을 참지 못하고 앞뒤 안 가리고 날뛰는 다혈질이다.
 그의 총기는 극과 극이다. 조관웅의 무리들과 맞섰을 때나 저자거리 왈패들과 대결할 때처럼 살기가 등등할 때는 그 누구도 제압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술실력을 발휘하지만 담여울이 뒤에서 휘두른 대나무에는 무기력하게 뒤통수를 내줄 정도로 착한 사람들 앞에서는 경계심이 허물어진다.
물론 그의 연기에서 '더 킹 투 하츠'의 왕제 이재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차대웅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시청자를 웃기는 장면에선 '1박2일'과 '강심장'도 얼핏 연상된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도 능력이다. 이승기가 20년 이상 연기한 전문배우라면 그게 핸디캡이겠지만 이제 27살의 노래하는 연기자다. 그렇다면 딱 그의 캐릭터에 맞는 작품에서만 활용된다면 그것도 올바른 선택이고 이승기가 걸어갈 수 있는 긍정의 길이다.
배수지는 '건축학개론'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고 배우로서의 새 장을 열게 된 게 맞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이 배수지에게 요구한 것은 '연기자 배수지'가 아니라 '미쓰에이를 통해 청순미를 한껏 뽐낸 배수지'였다. 그래서 감독은 배수지에게 연기를 시킨 게 아니라 19살의 풋풋한 청춘상을 그대로 보이도록 카메라를 설정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구가의 서'는 배수지에게는 사실상 주연배우 데뷔작이다. 아직은 이승기에 비해 분량이 적지만 이제 그와 동등한 비율로 드라마를 이끌어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별 논란이 없었던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 환호 혹은 비난의 다른 길로 갈라진 의견이 올라올 것이다.
그 전까지 아직은 배수지의 연기력은 못봐줄 수준은 넘는다. 이제 두번째 작품에서 퓨전사극이라는 복합적인 장르를 만나 자신의 연기력을 녹여내야 한다는 어려움도 곧잘 극복해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들의 숙제는 앞으로 두 사람 사이의 애정전선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이후다. 이승기나 배수지나 아직까지 작품 속에서 애정연기에 대해 수박 겉핧기 식으로 해온 게 사실이다. 이 작품이 어느 정도의 수위를 요구할 것인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보여준 연인의 연기보다는 확실히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줘야만 연기자로서의 그들의 위상과 능력이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초반부터 시청률 1위를 달리는 탄탄대로가 함정일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이승기와 배수지만 나오는 게 아니다. 유동근 이성재 등 탄탄한 중견연기자들이 버팀목이 돼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고 있으며 작가의 훌륭한 필력과 연출자의 능력 등이 혼합해서 작품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작품의 제작진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쳐 '향숙이 이뻤다'를 유행시킨 연기파 박노식까지 카메오로 등장시킬 정도로 나름대로 작품의 완성도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건 드라마든 영화든 주인공만이 작품을 죽이고 살리는 게 아니라 그들의 비중 이상으로 조단역 배우는 물론 전 스태프와 제작진의 노력이 성패를 가른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주연배우들의 연기력과 매력은 그 모든 공로의 방점이자 화룡점정이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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