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호는 재미있다.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웃들이면서도 하나같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개성들 때문에 지켜보는 이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을 때가 많다.
이번 영화 ‘런닝맨’(조동오 감독)의 형사 반장 안상기 역시 그렇다. 안상기는 얻어 걸린 기회에 ‘발바리’(?)를 검거해 반장으로 승진했지만, 여러모로 형사를 하기엔 부족함이 많은 인물이다. 느린 상황 파악력과 뒤떨어지는 수사력으로 범인 잡기에는 늘 실패하고 걸핏하면 기자에게 약점을 잡혀 중요한 수사 정보를 외부에 흘린다. 겁이 많아 총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용의자에게 인질(?)로 잡히기까지 하는 조금 덜떨어진 형사 반장이지만 허세와 자존심, 인정은 살아있어 소시민적 페이소스가 짙게 느껴진다.
“제가 그렇게 생겼나봐요. (웃음) 제가 맡은 역할에는 제가 좀 많아요. 김상호는 김상호인 거죠. 안상기로 바뀌지는 않아요. 그 인물이 그냥 저에요. 어떤 인물이 완성되면 감독님과 작가들이 김상호에게 주고, 그 형상이 저에게 와요. 그리고 그 속으로 제가 쑥 들어가요. 크게 부대끼는 게 있었다면 선택을 안 했을 거예요.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그렇지만 그 인물을 받아들이면 김상호의 마음에서 (어떤 인물이)쭉쭉 나오죠”

‘런닝맨’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 전역을 뛰어다니는 차종우(신하균 분)이 벌이는 도주극을 그린 작품. 지난 4일 개봉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완벽한 오락영화를 만들어서 기분이 좋아요. 어떤 영화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다양해요. 그렇지만 저희 영화는 단순하고 정확하게 영화의 이야기를 잡기 위해 한 방향으로 몰고 나갔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감독님한테 그렇게 말씀도 드렸어요. ‘편집실이 정말 고생 많이 하셨겠네, 고민도 많이 하셨겠다. 수고하셨다’고요. 영화가 정말 군더더기가 없어요”
주인공 차종우 역을 맡은 신하균은 액션 신이 많아 촬영 중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고, 그의 아들 차기혁 역을 맡은 이민호 역시 늑막염을 앓게 돼 촬영이 중단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김상호에게 촬영을 하며 힘든 것은 없었냐고 물었더니 “나는 아주 안전했다. 신하균씨는 뛰어 다니지만 나는 차를 타고 따라 다녔다”라는 명쾌한 대답으로 웃음을 줬다.
“하균이가 정말 고생을 했어요. 차에 부딪히고 자빠져 넘어지고, 영화 내내 그러잖아요. 하균이 분량을 찍고 처음 보면서 ‘야 저 고생을 했구나. 쟤 정말 고생했구나’ 감탄을 하게 되더라고요”
액션은 많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영화 속 김상호의 감초 같은 활약은 돋보였다. 미친 존재감을 가진 배우라는 수식어에 걸 맞는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웃음보를 빵빵 터뜨린 것.

“사실 (미친 존재감)그런 말을 좋아하진 않아요. 붙여주면 아 그렇구나, 붙였구나, 생각하고 넘어 가는 편이에요. 유행 같아서. 그냥 좋은 배우라고 불리고 싶어요. 저는 배우가 이 세상에서 분명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한 분들이 하루 단 몇 시간만이라도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힘내세요, 저보고 행복을 느끼십시오’하면서 기쁨을 주는 역할을 하는 거요.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그 놈 참 괜찮았다’라고 사람들에게 사후에라도 그렇게 기억되는 배우가 된다면 좋겠어요”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웃음을 안겨 주는 명품 배우이지만, 김상호는 언제나 자신의 연기에 대해 불만족스러움을 느낀다.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 시사회 때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편집실에서만 겨우 봤을 정도. 드라마의 경우에는 자신이 찍은 것들을 모니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소탈하고 코믹해 보이는 모습 뒤에 의외로 예민하고 섬세한, 또 다른 색깔의 얼굴이 보였다.
“아쉬움이 많아요, 늘. 만족했던 적이 별로 없어요. 전 제가 연기 하는 걸 스크린이나 TV에서 보면 창피해요. 제가 나온 드라마의 경우엔 집사람도 제가 있을 때는 못 보게 해요. 창피하고 부끄러워요. 나온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아쉬움 때문에 그랬나 봐요. 끝나면 다 아쉬워요. 그게 최선이었냐, 자문자답했을 때 예스, 최선 이었어, 하고 되돌아오는 답은 없었어요. 불안하고 무서워요. 계속 이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완벽주의적인 성격 탓일까.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 웬만하면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유를 들어보니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란다. 예능에 처음 출연했던 게 지금은 종영한 MBC ‘놀러와’였다. 그는 ‘놀러와’ 출연을 결정하기까지도 한 달이 걸렸고, 나가기로 결정한 날부터는 잠도 못 자고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물론 아직까지 자신이 나온 부분을 한 번도 확인 하지 못했다.
“그 사람들은 우리 홍보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자기의 목숨이 달린 일을 하는 거잖아요. 주간 시청률로 일희일비 할 수밖에 없고. 내가 나가서 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는데, 무슨 얘기를 하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녹화를 하고 집에 온 다음부터 아직까지 못 봤어요. TV를 볼 때도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가끔 ‘놀러와’가 곧 한다고 떠 있을 때가 있는데 바로 돌려버려요. 가슴이 쿵쿵 뛰어가지고요. 그 날 촬영 후에 술을 마시고, 그 뒤로는 ‘놀러와’ 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자체를 아예 못 봤어요. 언젠가 어느 경우를 통해서 (예능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겠지만, 44살의 김상호는 (예능을) 생각만 해도 무섭고, 미안하고 그러네요”
현재 그는 케이블 채널 OCN 드라마 ‘TEN2'를 촬영 중이다. ’TEN2'에서도 ‘런닝맨’처럼 형사 역을 맡았다. 그러나 이번에 맡은 백도식 역은 ‘런닝맨’의 안상기 같이 물렁물렁한 인물은 아니다. ‘백독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직감과 경험을 가진 베테랑 형사다. 드라마 촬영 일정에 대해 물으니 김상호는 “살인적인 스케줄”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수사물은 뭐가 어긋나면 시청자들이 굉장히 싫어해요. ‘에이 그렇지 한국드라마 수사물이 이렇지’ 하고요. 그래서 감독님도 엄청 고민하며 쓰고, 현장에서도 혹시 이게 맞는지 아닌지 계속 고민하고 상의하고 있어요. 그런데다 12부를 찍어야 해서 스케줄도 굉장히 빡빡해요”
그러한 고민 때문인지 현재 'TEN2'는 시즌1에 이어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말에 그는 “아직이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배우로서 그의 꿈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어쩌면 그는 이미 그것을 이룬 것처럼도 보인다.
“죽은 후에라도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살다가 이런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너는 참 멋진 아버지를 뒀다. 네 아버지 연기에 나는 행복하고 기분 좋았다’ 그런 말을 듣게 하는 아버지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악역을 하든, 슬픈 역할을 하든,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난 저 놈 보면 참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도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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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