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신' 이희준, 이렇게 착한 상사 있을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4.25 07: 23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해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희준은 그 여세를 몰아 '전우치'에서 주인공 전우치에 맞서는 악역 마강림 역을 맡아 주조연 배우로 우뚝 섰다.
하지만 '전우치'는 그에게 상처만 남겼다. 드라마경력이 일천한 그로서는 유명세를 얻자마자 출연한 사극이 자신의 몸에 맞지 않아 발음과 발성부터 시작해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며 질타를 받은 것.
그런 그가 기사회생했다. KBS2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을 통해서다.

이 드라마는 못하는 게 없는 수퍼우먼 계약직 사원 미스김(김혜수)과 영업팀 팀장 장규직(오지호) 간의 티격태격하는 스토리가 주축을 이루지만 전체적으로는 직장인들의 애환과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그 가운데 이희준이 맡은 영업지원팀 팀장 무정한의 착한 상사 캐릭터가 돋보이며 이희준에게서 연기력 논란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고 있는 것.
무정한은 장규직과 나이도 동갑이고 입사도 같이 한 동기이자 '절친'이다. 하지만 무정한이 주춤하는 사이 장규직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해외 연수도 다녀오고 무정한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 게다가 원래 무정한이 맡고 있던 영업팀 팀장 자리를 해외연수를 다녀온 장규직이 차지한다.
이쯤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장규직에게 질투를 느끼고 그를 시기할 만도 하건만 무정한은 그와 변함 없는 우정을 나누며 그의 단점을 카무플라쥐해주려 노력한다.
그의 친절함과 자상함 그리고 착함은 장규직 뿐만 아니라 부하직원들에게서 더욱 돋보인다.
미스김은 비록 3개월 계약직이지만 회사에 대해 '을'의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수퍼 갑'의 위치다. 회사가 거듭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고 해도 '회사의 노예가 되기 싫다'며 배려심 깊은 제안을 거절한다. 왜냐면 그녀는 못 하는 게 없는 만능의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회사에서 딱 3개월만 일하고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훌쩍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가 필요할 때가 되면 다시 취직하는 스타일이다. 그녀는 워낙 못 하는 게 없고 모든 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지라 마음만 먹는다면 어느 회사건 입사가 가능하다.
이에 반해 정주리(정유미)는 한 없이 나약한 계약직 직원이다.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대학에서 걸출하게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기에 스펙이 약한 그녀는 간신히 와이장 그룹에 계약직으로 취직했다. 겉으로 보기에 정주리나 미스김이나 다를 바 없지만 속사정은 완전히 정반대다. 정주리는 행여 재계약이 안 되면 어쩔까 노심초사 하는 가운데 정규직으로 채용될 꿈을 꾸고 있다.
게다가 일에 있어서도 정주리는 실수 투성이고 그래서 맡은 업무가 서류철이나 하는 게 고작이다.
희망이 없는 계약직의 현실에 절망하고 있던 그녀는 어느날 우연히 고향친구의 소개로 정규직 사원을 뽑는 회사에 면접을 볼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와이장 그룹에는 엄마가 교통사고 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면접을 보러가는데 그 시각 회사에서는 정주리 때문에 일대 소란이 벌어진다.
무정한 팀장은 정주리가 작업한 파일이 긴급하게 필요했는데 막상 면접보는 그녀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다. 다급한 무정한은 정주리의 고향집에 전화를 걸었다가 그녀가 거짓말을 한 사실을 알게 된다.
정주리가 와이장 그룹 식구들을 속여가면서까지 면접을 본 회사는 하지만 정상적인 회사가 아니라 다단계 제품 판매 사원을 뽑는 비정상적인 회사였다. 정주리는 정규직의 꿈은 커녕 값비싼 건강식품만 떠안게 된다.
결국 정주리는 무정한 팀장에게 다가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려고 하는데 그 순간 무정한은 그녀의 비밀을 지켜주며 웃음으로 보답한다. 무정한은 정주리가 비록 하잘 것 없는 계약직이지만 그녀의 인격을 존중해 자존심을 지켜준 것이다.
뿐만 아니다. 무정한은 일요일 갑자기 정주리의 하숙방을 두드린다. 전날 정주리가 비싸지도 않은 핸드백 수선을 맡겼는데 막상 수선비가 없어 핸드백을 찾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대신 수선비를 지불하고 핸드백을 정주리에게 갖다 준 것이다. 이렇게 자상하고 마음씨 넉넉한 상사가 있을까?
그리고 무정한은 정주리를 자신의 자전거 뒷좌석에 태우고 벚꽃이 휘날리는 거리를 내달림으로써 그녀의 마음을 위무해준다.
미스김은 한 없이 냉정하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된 데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대다수가 회사를 가족의 울타리처럼 생각하는 것에 반해 단순히 일하고 돈을 받는 곳으로만 알고 직장동료를 가족이 아닌, 경쟁자로 여긴다.
그럼에도 무정한은 미스김을 한 식구처럼 여긴다. 그래서 월급날 치마를 사고 미스김을 찾아가 억지로 건네준다. 미스김은 비록 회사동료를 식구로 여기지 않을지라도 자신은 한 식구처럼 여기기 때문에 이렇게 선물을 한다며.
황갑득(김응수) 부장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또 장주리씨냐'며 정주리를 책망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성조차 정이 아닌 장씨로 잘못 알고 있을 만큼 비정규직 직원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랭하다. 하지만 무정한은 다르다. 그녀는 정주리에게 황부장 대신 사과하며 황부장에게는 또박또박 '장주리씨가 아니라 정주리씨다'라며 그녀의 성을 바로잡아준다.
특히 무정한의 장규직에 대한 애정은 무궁무진하다. 매번 미스김에게 당하기만 하는 장규직을 위로해주는가 하면 장규직이 흥분해서 사고를 칠 양이면 온몸으로 막아준다.
미스김을 둘러싸고 무정한과 장규직에게는 묘한 애정의 분위기가 흐른다. 그 사랑의 감정은 무정한이 먼저 느꼈다. 하지만 벚꽃이 흩날리는 공원 벤치에서 장규직이 미스김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고 장규직을 지원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다. 이렇게 착한 상사, 마음씨 고운 동료가 있을까?
'전우치'에서 사극의 악역이라는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쳤던 이희준은 이번에 무정한이라는 안성맞춤의 옷을 잘 차려입었다. 그의 부드럽다 못해 우수에 잠긴 듯한 눈빛과 표정은 무정한과 딱 떨어져 보인다. '전우치'에서 어눌했던 그의 대사도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 그가 돋보이는 점은 아마 무정한이라는 직장상사의 캐릭터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네 회사에는 상사에게 아부하고 부하직원을 닥달하며 공로를 자신이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된 장규직같은 상사가 더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정한이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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