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은 너무 진지하고, 스파이더맨은 너무 애 같다, 아니 그냥 아이다. 헐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지막지 하고, 캡틴 아메리카는 범생이같다. '아이언맨'은 그런 점에서 한 번쯤 '저 사람이 만약 내 남자라면?'이란 생각을 들게 만든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이언맨3'(셰인 블랙 감독)는 캐릭터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다.
아이언맨은 줄곧 '가장 매력적인 히어로'라고 불려왔다. 다른 히어로들이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 만큼 아이언맨이 갖는 개성과 매력이 남다른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여성들에게 히어로가 아닌, 인간적으로 어필하는 '섹시한' 코드로 무장한 히어로라고도 할 수 있다.
아이언맨은 모든 걸 갖춘 남자 같지만 반대로 허술한 점이 많아 모성애를 자극하는 인물이다.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군사무기를 개발하는 과학자이자 사업가로 엄청난 재력과 천재적인 두뇌, 넘치는 유머,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는 재력이 많다는 걸 무심한 듯 시크하게 과시하는 편이고, 다른 히어로들처럼 자기 자신을 숨기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공식석상에서 "내가 아이언맨이다!"라고 외칠 정도니. 백만장자인 이 플레이보이는 다른 히어로처럼 특별히 약점도 없고, 치명적인 고민거리도 없다.

하지만 아이언맨이 될 때 다친 심장에서 계속 통증을 느끼고, 성숙한 사랑에 익숙치 않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하는 토니 스타크는 마치 성장하는 청소년 같은 느낌을 준다. 거기에다가 쿨하고 까칠해보이지만 내면에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 돼 있지만, 순탄치 않은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그는 여성 관객들에게 '지켜주고 싶은 히어로'라는 느낌도 준다.
더욱이 이번 편은 수트를 벗은 인간적인 아이언맨을 보여줌으로써 아이언맨의 인간적인 고뇌에 주목한다. '어벤져스'에서 웜홀을 통해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를 맞딱뜨리고 패닉 상태에 온 토니 스타크는 처음으로 자신감을 잃고 나약함에 빠진다. 오죽하면 포스터 카피 중 하나가 '히어로, 그딴 건 없다'였을까.
하지만 여성 관객들을 안심시키는 것은 이런 위기 속에서도 토니는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뇌를 다룬다고 해서 '다크나이트' 시리즈 속 배트맨이 겪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토니 스타크에게는 특유의 초연함이 있다.
잠을 잘 못잘 정도로 끊임없는 불안증세에 시달리는 그는 우연히 자신의 조력자가 된 어린 아이에게 "정비공이니 뭐든 만들어보세요"라는 말을 듣고 무언가를 만들며 극복해나간다. 그는 행동주의자다. 사실 이번 편은 전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1, 2편 보다 유머가 강화됐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로튼토마토'에는 "극한 위기에서도 놓치지 않는 유머"를 이번 편의 매력이라고 한 평이 존재한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 온 옛 하룻밤 상대 여성에게 "차에 12살 짜리 아이가 있냐?(내 자식이 있냐?)"고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유머는 상황을 순간 반전시키는 힘이다.
캐릭터의 변화가 서사라면, 아이언맨은 어떤 히어로보다도 드라마틱하다. 특히 이번 편은 멜로가 한층 강화됐는데, 하룻밤 상대를 즐기며 놀고 지내던 그는 '영혼이 있는' 평생 사랑할 여자 페퍼포츠(기네스 펠트로)를 얻고 수트를 벗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망나니 같던 그가 한 여자로 인해 자신을 변화시킨다. 한국 드라마에서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실장님, 본부장님들과 '아이언맨'은 사실 어딘가 닮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바람둥이 길들이기'는 할리퀸 속 변치 않는 여자들의 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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