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와 포수를 묶어 이르는 ‘배터리’는 운명 공동체다. 어느 하나라도 자신의 몫을 하지 못하거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둘 모두 나락으로 빠져든다. 류현진(26)과 라몬 에르난데스(37) 배터리도 온탕과 냉탕을 오고 간 하루였다.
류현진은 26일(이하 한국시간) 미 뉴욕 시티필드에서 열린 ‘2013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3피안타 3볼넷 8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시즌 3승 도전이 좌절됐다. 그러나 메이저리그(MLB) 진출 이후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함과 동시에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며 지난 21일 볼티모어전 난조에 대한 우려를 깨끗하게 지웠다. 등판을 마친 류현진의 표정도 밝아보였다.
이날 류현진은 베네수엘라 출신의 베테랑 포수 라몬 에르난데스와 호흡을 맞췄다. 다저스의 포수 세 명(엘리스·페데로위츠·에르난데스)와 모두 배터리를 이뤄본 경험이 있는 류현진이 3경기 연속 에르난데스와 운명을 함께 한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호흡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다. 이 경기를 지켜본 현지 중계진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요소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류현진과 에르난데스는 이전 등판에서도 초반에는 직구 위주의 패턴을 선보였다. 이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1회에는 직구로 밀어붙였다. 1회 2사에서는 강타자 데이빗 라이트를 상대로 모두 직구를 던졌다. 허를 찔린 라이트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삼진을 당했다. 현지 중계와 MLB 투구분석 시스템에 표기된 구속은 대부분 80마일 후반대(141~143㎞) 정도였지만 제구가 워낙 좋았다. 다저스측 FOX스포츠 중계진은 “직구의 위력이 좋다”고 평가했다.
2·3회를 거치며 변화구 구사 비율이 높아졌다. 2회에는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했다. 3회에는 1·2회에 잘 던지지 않았던 주무기 체인지업을 섞었다. 4·5회에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하는 패턴을 선보였다. 메츠 타자들은 체인지업을 노린 탓인지 슬라이더에는 타이밍이 자주 빗나갔다. 그 결과 투구수는 급격히 줄었다. 1회 18개의 공을 던진 류현진은 2회부터 5회까지 단 47개의 공만을 필요로 했다. 효율적이었다. 여기까지의 포수 리드는 오히려 좋은 편에 속했다.
그러나 6회가 문제였다. 류현진의 직구 구속은 4회와 5회 다소 떨어졌다. 90마일(144.8㎞)에 이르는 공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일까. 에르난데스의 6회 볼 배합은 정면승부보다는 피해가는 경향이 짙었다. 확실한 결정구보다는 다양한 변화구를 섞으며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으려 했다. 그러나 이날 메츠측 SNY 중계진은 6회 “직구 승부구가 적다”라고 지적했다. 제구가 된 직구는 충분히 위력이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FOX 중계진 또한 6회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활용하지 않는 에르난데스의 볼 배합에 다소간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선두 루벤 테하다에게 볼넷을 허용한 후 대니얼 머피와 풀카운트 승부를 벌일 당시 FOX 중계진은 “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류현진은 체인지업이 최고 무기다”라고 체인지업 승부를 예상했다. 그러나 이미 머피의 눈에 많이 익었던 슬라이더를 던지다 안타를 맞았다.
이후 라이트의 타석 때도 2B-2S 승부처에서 체인지업을 예상했으나 결국 직구를 선택했고 볼이 됐다. 6구 체인지업을 라이트가 가까스로 커트해 낸 것을 고려하면 아쉬웠다. 결국 풀카운트에 몰린 류현진이 던진 직구는 한가운데로 몰리며 희생 플라이로 1점을 허용했다. 라이트는 직구를 노리고 있었고 장타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이후 말론 버드에게는 유리한 볼 카운트에서 커브를 던지다 좌익선상 2루타를 허용하기도 했다.
결과론적이지만 6회 승부처에서 좀 더 과감하게 직구 승부를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 류현진은 6회 2사 2,3루에서 아이크 데이비스를 92마일(148㎞) 짜리 직구로 삼진 처리했다. 위기 상황을 직구로 넘기자 FOX 중계진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7회 선두 타자 앤서니 레커 역시 90마일(144.8㎞) 직구로 삼진을 잡아냈다.
경기 막바지, 그리고 승부처에 이르면 직구에 힘이 실리는 류현진 특유의 스타일이 잘 엿보인 순간이었다. 실제 이날 류현진은 전체 21개의 아웃카운트 중 9개(병살타 1개 포함)를 직구로 잡아냈다. 직구가 안타를 맞은 경우는 1개뿐이었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위력은 있었다는 이야기다.
두 선수는 아직 서로가 낯설다. 에르난데스가 시즌 초반 팀에 합류해 서로의 스타일을 이제야 알아가는 과정이다. 류현진이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다. FOX 중계진은 허니컷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오를 당시 “한국인 류현진과 스페인어를 쓰는 에르난데스가 만났다”고 말했다. 농담조이긴 했지만 뼈 있는 지적이기도 하다. 앞으로 MLB에서 뛸 날이 많고 수많은 포수를 만나야 하는 류현진으로서는 어쩌면 1승 이상의 깨달음을 얻은 경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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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김재현 객원기자, phot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