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었던 류현진, ‘에이스 피 살아있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4.26 06: 39

류현진(26, LA 다저스)은 한화 시절의 상당 기간을 고독한 에이스로 보냈다. 팀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서 등판하는 일이 많았고 그나마 동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적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항상 표정 변화없이 꿋꿋하게 이겨내곤 했다. 그런 모습이 메이저리그(MLB)라는 큰 무대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류현진은 2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뉴욕 시티필드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비록 타선지원을 받지 못해 승리를 챙기지는 못했지만 MLB 진출 이후 최장이닝인 7이닝을 던지며 내셔널리그 타격 상위권 팀인 메츠를 단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류현진의 활약을 발판 삼은 다저스는 경기 막판 힘을 내며 3-2로 이기고 동부 원정을 마무리했다.
여러모로 중압감이 있었던 경기에서의 호투라 의미는 더 값졌다. 다저스는 전날 메츠에 연장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으며 3-7로 역전패했다. 역전패 중에서도 충격이 큰 역전패였다. 직전 2경기에서 선발 투수들이 6이닝을 넘기지 못해 불펜 소모도 컸다. 타선은 여전히 신통찮았다. 가뜩이나 팀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그러나 류현진은 묵묵하게 이 압박을 이겨냈다.

다저스 선발 투수가 7이닝 이상을 소화한 것은 지난 15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의 조시 베켓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베켓은 8⅓이닝 1실점의 역투를 펼쳤다. 그 이후 다저스 선발 투수들은 이닝이터로서의 몫을 수행하지 못했다. 팀으로서는 류현진이 11일, 그리고 9경기 만에 선발다운 면모를 과시해준 것이었다. 한편 류현진은 올 시즌 5번의 등판에서 모두 6이닝 이상을 던졌는데 이는 다저스 선발투수 중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몇 차례 위기나 성가신 상황도 노련하게 넘어갔다. 류현진의 퍼펙트 행진이 깨진 것은 3회 1사 상황에서 나온 유격수 셀러스의 실책이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4회 위기 상황도 잘 넘긴 류현진은 6회 동점을 허용했으나 더 이상의 실점을 막고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흐름이 메츠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했다. 타선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7회까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며 팀 승리의 디딤돌을 놨다.
적응력도 돋보였다. 류현진은 지난 2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낮 경기 변수에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시차 문제도 거론됐다. 그러나 이날은 그런 영향이 거의 없어 보였다. MLB 진출 후 체인지업만큼이나 애용하고 있는 슬라이더의 위력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우타자 몸쪽 승부가 좋았던 하나의 이유다.
다저스 중계를 담당하는 FOX 중계진은 등판을 마치고 덕아웃에서 격려를 받는 류현진이 카메라에 잡히자 “100개 이상의 공을 던졌다. 매우 뛰어난(Great) 피칭이었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이 한 경기로 류현진이 다저스의 에이스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에이스의 피가 살아 흐른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손색없는 한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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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김재현 객원기자, phot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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