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애환을 탈탈 털어버리는 풍자와 패러디
악플러도 아랑곳하지 않는 돌직구..‘입닥치자’
걸그룹 포미닛이 tvN ‘SNL코리아’와 만나 그야말로 훨훨 날아올랐다. 19금과 파격적인 대사와 장면들이 난무했지만, 단순히 19금 유머에서 그치지 않고 풍자와 패러디를 곁들여 아이돌 그룹의 입장을 대변하듯 그들의 애환과 울분을 마음껏 토해냈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27일 방송된 ‘SNL코리아’는 사전에 포미닛이 호스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방송 전부터 걱정과 기대가 교차됐다. 걸그룹 특성상 ‘SNL코리아’ 특유의 ‘병맛 유머’나 ‘19금 유머’에 제약이 따를 것이란 우려에서였다. 반면 멤버들이 ‘SNL’의 광팬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한다는 제작진의 전언과 ‘섹시 아이콘’ 현아의 존재감 등은 기대요소로 작용했다.
뚜껑을 연 포미닛 편은 기대 이상이었다. 최근 ‘SNL코리아’가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풍자나 패러디 시도보다는 단순히 일차원적이고 자극적, 선정적인 부분에 치우쳤던 것에 대해 쌓였던 일련의 걱정을 씻어낸 것.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콘셉트를 차용한 ‘패왕색의 현아’는 야외 콩트물로 구성돼 현아에 얽힌 전설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밝혀내는 내용으로 전개됐다. 고문헌에서 ‘패왕색 현아’, ‘현아는 요물’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제작진은 급기야 현아가 1412년 트란실바니아에서 최초 목격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 현아는 모든 남성들을 현혹시켜 여성들의 질투심을 샀고, 결국 마녀로 몰려 화형 위기에 처했지만 결국 '패왕색'으로 마을을 초토화시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는 내용이다. 이후 현아로 추정되는 인물은 잔다르크, 양귀비, 해적여제 등 여러 시대, 여러 장소에 다른 이름으로 출몰했고, 현재 포미닛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는 설명.
이는 같은 의상이나 춤을 춰도 매번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는 현아 스스로의 실제 이야기를 '서프라이즈-진실 혹은 거짓' 콘셉트를 활용해 꼬집고 비틀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은교’의 패러디 ‘응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신동엽과 현아의 실제에 가까운 연기만으로 충분한 자극과 재미를 줬지만, 그보다는 여자 연예인들이 별다른 의도 없이 하는 행동에 일방적인 해석을 곁들여 반응하는 뭇남성들에 대한 일침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정점은 ‘SNL코리아’ 뮤직비디오에서 찍었다. 크라잉넛 ‘말달리자’를 개사한 ‘입닥치자’는 아이돌 그룹을 향한 웹상 악플러들에게 ‘왜 우리만 까는거야. 악플 이제 그만좀해’라며 돌직구를 날렸다.
이어지는 가사들도 실제 웹상에서 번번이 벌어지는 악플러들의 행동을 꼬집었다. ‘우리는 달려야해. 듣보잡이 될 수 없어’라는 외침은 잊혀지지 않으려고 휴식도 없이 활동을 반복하는 아이돌의 고충을 대변했다. 포미닛 본인들이 실제 논란의 도마에 올라 공격을 받았던 '손가락욕 사진'과 ‘쩍벌춤’ 선정성 논란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았다. ‘쩍벌춤’ 논란 뒤 등장한 축구선수 루니의 세리모니 합성은 다시 봐도 압권이었다.
겉으로는 단순히 소리치고 수위 높은 단어와 사건들의 나열처럼 보이는 ‘입닥치자’ 뮤직비디오는, 아이돌 그룹이 겪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이날 포미닛이 주도적으로 나서 선보인 콩트 ‘사과실업’, ‘한석규의 연기아카데미’, ‘순결한 재범씨’ 역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겪는 선정성 논란, 발연기 논란, 말실수 논란 등을 소재로 차용해 각각 다른 콘셉트로 풀어내 공감과 박수를 자아냈다.
‘SNL코리아’ 포미닛 편은 그간 다른 호스트가 긁지 못했던 부분을 시원하게 해결했다. 또한 멤버들이 두루 직접 연기에 참여한 점도 눈여겨볼 만했다. 연기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멤버도 일부 있었지만, 전지윤과 허가윤 등은 예상외로 발군의 연기력으로 재발견됐다.
현재 ‘SNL코리아’ 크루로 활약 중인 신동엽과 박재범은 앞서 호스트로 출연했다가 재미와 재능을 인정받고 고정크루로 합류한 케이스다. 혹, 이번을 계기로 포미닛 멤버들이 크루로 합류해 향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아이돌 그룹과 관련된 시의적인 사안들에 재치가 번뜩이는 콩트로 '산뜻한 돌직구'를 날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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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SNL코리아' 화면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