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최초 ‘야구노래’ 추정 악보와 가사 발견...근대서지학회 오영식 씨 공개,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가’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4.29 12: 22

 8 · 15 해방 이후 최초의 ‘야구노래’로 추정되는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가(全國中等學校野球選手權大會歌)’의 악보와 가사가 발견됐다.
근대서지학회 오영식 편집위원장(서울 보성고 국어교사)이 입수, 최근 공개한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가’는 가로 11cm, 세로 15.5cm 크기의 한 장짜리 유인물에 1절부터 3절까지의 가사와 악보가 실려 있다.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는 현재 조선일보사가 주최하고 있는 청룡기쟁탈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의 전신으로 8· 15 해방 직후인 1946년 9월에 자유신문사의 주최로 첫 대회가 열렸다. 자유신문사는 1946년 8월 5일에 대회 개최 요강을 발표했고, 1946년 9월 11일 경성운동장(서울운동장)에서 역사적인 개막식을 열었다. 첫 대회 참가학교는 24개교, 참가선수는 528명이었다. 첫 대회 우승기(청룡기)는 대구상업의 품으로 돌아갔다. 

(1999년 대한야구협회· 한국야구위원회 펴냄)에는  ‘1946년 9월 11일 경성운동장(서울운동장 전신) 입장식에서 자유신문사가 작사하고 이화여고 박은용 교사가 작곡한 대회가가 이화여고 400명 합창단에 의해 울려 퍼졌다’고 묘사해 놓았다.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 게재했지만 가사와 악보는 실려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오영식 교사의 ‘야구노래’의 발굴로 그 가사와 악보를 처음으로 확인하게 된 셈이다. 1904년 필립 질레트가 이 땅에 야구를 들여온 이래 ‘야구를 소재로 삼은’  노래는 1919년 홍난파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야구전(野球戰)’ 이후 이번이 두 번째이다.
‘야구전(野球戰)’은 1919년  홍난파의 에 실려 있는 것으로 ‘Y. H. HONG’이라는 영문 이니셜과 함께 2절로 된 가사와 악보가 들어 있다.   ‘Y. H. HONG’은 홍난파의 본명 홍영후의 이니셜로 보인다.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가’의 악보는 ‘행진곡풍(行進曲風)으로’, ‘자유신문사찬(自由新聞社撰)’, ‘박은용(朴殷用) 작곡’으로 명기해 놓았다.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가’의 가사 1~3절은 다음과 같다. (표기는 원문 그대로)
一. 슬기로운 靑年의 意氣를 모아
    세워보세 새로운 歷史의 이날
    한맘으로 던지는 공을 보아라
    곳고도 바르고 빠른 이 공을
    勝利로 달려가는 우리의 마음
二. 검고 붉은 입술에 담은 決意와
    鐵杖가튼 두 팔에 힘을 모아서
    우리들이 후려치는 공을 보아라
    蒼空을 가르며 닷는 저 공에
    千萬軍 물리치는 勇氣가 잇다
三. 우리들의 자랑은 靑春의 피와
    죽엄에도 나서는 祖國의 사랑
    이 사랑과 피로서 서로 뭉칠 때
    大會의 꼿다발 우슴을 웃고
    榮光의 優勝旗는 더욱 빛난다
이 야구노래의 작곡가인 박은용은 이화여고 교사를 지낸 성악가이자 작곡가로 해방 공간에서 작곡과 음악평론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6· 25 직전에 월북, 한국 음악계에서 잊혀 진 존재가 됐던 인물이다.
박은용은 8·15 해방 이후 1947~1949년 사이에 독창회를 수차례 열었고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일간지와 신천지(新天地), 문장(文章), 민성(民聲) 같은 종합 잡지나 문예지에도 음악 관련 글을 여러 편 발표했다.
경북 김천 태생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1946년 6월25~26일, 28일에 주최로 대구 만경관과 김천극장에서 이영옥의 피아노 반주로 독창회를 개최했는데(손태룡, 2006년 4월 3일 영남대학교 출판부) ‘경북이 낳은 음악의 천재’로 소개됐다. 가곡 ‘충성가’의 작곡자인 박은용은 ‘산유화’와 ‘진달래꽃’을 작곡한 김순남의 곡을 초연하기도 했다.
 
자유신문사는 해방 직후인 1946년 조선야구협회가 출범 한 이후 첫 번째로 치른 대회인 4도시대항 야구전에 이어 전국시도대항 야구대회와 조·미(朝·美)친선야구대회, 전국대학전문야구선수권대회 등 여러 야구대회를 주최해 해방공간에서 우리나라 야구 재건에 앞장섰던 신문사였다.
당시 자유신문사 이정순 편집위원장이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추천한 사업이 야구대회 개최였다. 자유신문사가 우리나라 야구발전에 기여한 업적 가운데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할 것이 바로 1946년에 시작한 청룡기쟁탈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의 창설이었다. 이 대회는 자유신문사가 주최한 대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커 그만큼 심혈을 기울인 대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유신문사는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 창립 때 우승기로 청룡기를 만들었다. 그 대회의 상징인 청룡기는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4~2002) 화백의 그림을 수놓아 제작한 것이다. 당초 ‘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라는 대회 명칭과 ‘자유신문사’의 이름은 당대의 명필 성제(惺齊) 김태석(金台錫)의 글씨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전국중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당시 학제는 중학 5년제)는 1950년 제 5회 대회를 마친 일주일 뒤 6· 25가 터져 1951년과 1952년의 제 6, 7회 대회 치르지 못했다. 1953년 조선일보사가 자유신문사의 발행 중단에 따라 대회를 인수, 청룡기에 적힌 자유신문사라는 글귀를 조선일보사로 바꿔 8회 대회부터 사용했다. 그 청룡기는 1957년 인천 동산고가 3년 연속 우승, 영구 보관하고 있다.
chuam@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