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선수의 부상과 슬럼프에 배후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누가 나와도 주전 자리가 채워지는 현상. 지금의 두산 베어스는 ‘선순환 야구’를 펼치고 있다.
두산은 29일 현재 시즌 전적 13승 1무 6패를 기록하며 KIA와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5일 목동 넥센전서 연장 10회 6-3 승리를 거둔 이후 4연승 중.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볼 만한 것이 있다. 바로 시즌 전 주력으로 생각했던 선수들 대신 배후 선수들이 맹활약으로 팀 승리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24일 넥센에 1-9로 패하던 당시 두산은 새 마무리였던 홍상삼의 1이닝 1실점 및 셋업맨 변진수, 이재우의 잇단 난조로 쐐기점을 내줬다. 그러나 25일 상무 출신 사이드암 오현택의 4이닝 노히트투에 이은 좌완 유희관의 1이닝 무실점 안정된 매조지로 6-3 승리를 거뒀다. 오현택과 유희관 모두 상무에서의 기량 성장세는 인정받았으나 확실히 검증되지는 않았던 선수들이다.

26~28일 마산 NC 원정에서는 야수진의 충원 능력이 돋보였다. ‘두목곰’ 김동주의 최근 페이스가 좋은 편이 아니고 3번 타자 김현수도 오른 발바닥 부위의 뼛조각 충돌 증후군 증세로 인해 제 위력을 비추기 어려운 상황. 그런데 여기서는 민병헌의 활약이 빛났다. 당초 정수빈에 밀려 우익수 자리 차점자로 평가받던 민병헌은 3연정 12타수 4안타 1홈런 1타점에 2도루를 기록하며 강한 2번 타자의 활약을 비췄다. 타격이 아쉽다던 민병헌은 경찰청에서 타격 기술을 익히고 타격폼을 바꾸며 장타 양산에도 힘을 기울였다.
민병헌 뿐만 아니다. 고영민을 대신해 1군에 오른 경찰청 제대병 박건우는 27일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때려내며 장타력을 과시했다. 내야 유틸리티 요원이라던 허경민은 5경기 연속 안타 행진으로 타격감은 물론 강한 어깨와 빠른 발이 바탕된 안정되고 화려한 수비도 보여주는 중이다. ‘이 대신 잇몸’이라는 말을 넘어 잇몸이 웬만한 어금니 못지않게 씹고 있다.
두꺼운 선수층 못지 않게 지난해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해보겠다는 의지가 커졌다. 지난 시즌 두산은 젊은 선수들이 가끔씩 중용되기도 했으나 출장 기회 배분에 있어 미묘한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시즌 두산 타자들 중 규정타석을 충족시킨 이는 김현수, 양의지, 이종욱 단 세 명이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출장 기회 배분에 일관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고 분위기도 침울해지는 감이 컸다.
지금은 다르다. FA 이적 복귀와 함께 새 주장으로 선임된 홍성흔은 “코칭스태프의 출장 기회 부여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함께 뭉쳐 힘을 내자”라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데 집중했고 지난해 가장 배제되어 있던 김동주 끌어안기에 나섰다. 소외되었던 맏형을 끌어안고 훈련 중에도 파이팅을 외치며 선수단 전체에 서로를 독려하는 분위기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2007~2008시즌 두 차례 한국시리즈 준우승 당시의 분위기와 가까워졌다.
지난 14일 롯데전 막판 2실점으로 동점 빌미를 내줬던 이재우는 자신의 슬럼프를 변명하기보다 “내가 경기를 연장으로 이끄는 바람에 연장전에 나왔던 (민)병헌이가 허벅지를 다쳤다. 내 잘못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다행히 민병헌의 부상은 가벼운 것으로 나타났고 휴식기 후 곧바로 출장할 수 있었다. 선수들이 서로를 독려하는 분위기가 만든, 힘든 가운데 자신보다 서로를 더욱 챙기는 마음씨가 알려준 일화다.
야구는 멘탈 스포츠다. 외관이 화려해도 제대로 된 분위기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그 팀은 ‘모래알 팀워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외부적 이미지 상 ‘두꺼운 야수층’으로 알려진 두산. 그러나 '나도 동료들과 함께 잘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팀 분위기로의 변화가 두산의 현재 ‘선순환’ 야구를 이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분위기를 어떻게 유지시키느냐다. 상호 간의 존중이라는 아교가 없다면 두산 야구는 어떻게 흘러갈 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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