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마운드가 ‘투수들의 무덤’이라던 말은 옛말이 되가는 듯싶다.
LG가 올 시즌 21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리그 2위에 해당하는 평균자책점 3.71로 선전 중이다. 비록 이제 막 시즌 전체의 16% 남짓 지나갔지만 평균자책점 뿐이 아닌 WHIP(이닝당 출루 허용율 1.31·4위) 홀드(15개·1위) 피안타율(2할4푼8리·공동 2위) 피OPS(.673·2위) 등에서 상위권을 마크하고 있다. 불펜진이 기대했던 대로 승리를 지키고 토종 선발진 또한 우려했던 것보다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결과다.
사실 불펜의 선전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지난 시즌에도 LG 불펜은 리그 공동 3위에 해당하는 평균자책점 3.60을 마크, 고질병이었던 뒷문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했었다. 봉중근이 마무리 투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수호신이 됐고 유원상은 셋업맨 위치에서 마침내 자신의 재능을 폭발시켰다. 우규민과 이동현은 잦은 등판 속에서도 꾸준했고 류택현과 이상열 두 베테랑 좌투수가 노련함을 과시한 결과였다. 그리고 지난겨울 리그 최강 삼성 불펜진의 맏형 정현욱을 FA로 영입, LG는 비로소 리그 정상급 불펜진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지훈련부터 지금까지 마냥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모든 팀이 마찬가지지만 LG 역시 몇몇 투수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부상과 컨디션 난조와 마주했다.
WBC 출전을 위해 대표팀에 합류했던 유원상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고 이동현도 시즌 개막까지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았다. 차세대 불펜 에이스로 점찍은 최성훈은 어깨부상으로 전지훈련 이후 실전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후반기 선발진 최다승을 올린 신재웅도 무릎수술로 1군 등판이 늦어졌다. 이동현은 페이스를 찾고 있지만 유원상은 지난 25일자로 컨디션 회복을 위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상열과 류택현도 한 번씩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바 있다.
모든 이들이 LG의 약점으로 꼽았던 토종 선발진도 선전 속 일장일단이다. LG는 지금까지 퀄리티스타트 8번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중 6번을 주키치와 리즈가 올렸다. 우규민 임찬규 신정락 모두 아직 1군에서 선발투수로 풀타임을 소화한 경험이 없는 만큼,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특히 신정락은 올 시즌 처음으로 선발투수로 1군 무대를 밟았다. 그래도 현재 세 투수 모두 선발승을 거둔 상태다.
불펜진 컨디션 난조와 2% 부족한 선발진에도 LG가 투수 부문 상위권 성적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철저한 관리를 기반으로 투수진이 두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1군에 공백이 생기면 2군에서 올라온 투수가 이를 메워준다.
LG는 지난 시즌부터 면밀하게 투수의 구위와 몸 상태 등을 체크했고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여지없이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재활 중인 투수는 심혈을 기울어 오버페이스를 막았고 100% 컨디션에서 정상 등판시켰다. 혹사 방지를 위한 세심한 관리가 투수진을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즌 초반 구위 하락을 겪은 우규민과 이동현은 휴식과 컨디션 조절을 위해 2군으로 내려갔다가 1군 복귀 후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재활 과정에 있던 봉중근은 2011년 팔꿈치 수술 후 1년이 지난 6월 중순까지 투구수와 이닝수에 제한을 둠과 동시에 연투 금지령을 내렸다. 임찬규 이승우 최성훈 임정우 등 신예 투수들 역시 구위 하락의 낌새가 보이면 2군으로 보냈다. 2010년 프로 입단 후 매년 제구난조와 부상에 시달렸던 신정락은 2군에서 몇 달 동안 투구폼 수정에 들어갔다.
올 시즌에는 유원상의 구속이 130km대로 떨어지자 곧바로 유원상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차명석 투수코치는 지난 시범경기 기간에 우려 속에 대표팀에서 복귀한 유원상을 두고 “가장 확실하게 몸 상태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실전에 투입시키는 것”이라고 했는데 말 그대로 실전 등판 모습을 보고 유원상을 내렸다. 지난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신재웅과 최성훈도 부상으로 개막전 엔트리 합류가 불발됐지만 100% 컨디션을 맞추는 데 중점을 두고 복귀를 서두르지 않았다. 2군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류제국 정찬헌 이형종도 완벽한 상태가 아니면, 1군에 올라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분명 이는 이전의 LG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매년 재능 있는 투수들이 LG의 에이스를 꿈꾸며 입단했지만 두각을 드러낸 이들에게 너무 큰 짐을 안게 했다. 항상 ‘혹사 혹은 부상으로 인한 구위하락과 엔트리 제외, 그리고 또 다른 유망주의 혹사나 부상’라는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걸었다. 정찬헌과 이형종 또한 관리의 부재를 여실히 느끼게 한 경우였다. 그러면서 어느덧 LG 마운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렸다.
현재 유원상의 공백은 정상 컨디션을 찾아가는 이동현과 프로 데뷔 후 가장 좋은 구위를 뽐내고 있는 임정우로 메우고 있다. 류택현이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컨디션을 되찾은 신재웅이 돌아와 원포인트 릴리프와 롱맨 역할을 모두 소화한다. 신정락은 지난해 투구폼 수정과 함께 긴 이닝을 소화하는 선발투수로 진화했다.
LG 김기태 감독은 “절대 성적을 위해 선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폭넓게 선수단을 운용하고 있다. LG 차명석 투수코치 또한 “앞으로 LG가 ‘투수들의 무덤’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코칭스태프의 의지는 숙련된 트레이닝 파트와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LG 투수들 상당수는 지난해 12월에도 재활과 컨디션 관리를 위해 자진해서 사이판에 캠프를 차리고 일찍이 올 시즌을 대비했다.
올 시즌 LG 투수진의 목표는 팀 평균자책점 3.60이다. 지난 5년 동안 팀 평균자책점 3.60 이하인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팀 평균자책점이 곧 최종 순위로 직결된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LG의 지상과제 또한 지금의 체제 하에 시즌 마지막까지 마운드의 높이를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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