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는데 어림없는 아웃. 여유있는 리드에서의 모습이라 동료들은 물론 팬들도 허허 웃었고 자신도 민망했는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팀의 확실한 자산이다. 감독도 그를 언급한 뒤 시즌 전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흐뭇해했다. 4년차 내야수 홍재호(26, KIA 타이거즈)는 단독 선두 KIA의 숨은 공신이다.
홍재호는 지난 1일 잠실 두산전에서 아직 손목 타박상 여파가 남아있는 주전 최희섭을 대신해 교체 출장한 뒤 8-1로 크게 앞선 7회초 유격수 앞 땅볼을 때려냈다. 1루로 뛰던 홍재호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인지, 아니면 뛰다 넘어졌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풀썩 쓰러졌다. 너무도 여유있는 아웃에 잠실구장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당사자도 민망했는지 김평호 코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을 정도. 그러나 홍재호의 가치는 그저 7회초 몸개그 하나로 평가절하될 것이 아니다. 팀이 믿고 있는 내야 유틸리티 요원이기 때문이다. 부산고-고려대를 거쳐 지난 2010년 7라운드로 KIA 유니폼을 입은 홍재호는 대학 시절 주장을 맡으며 근성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던 유망주다.

지명 순번은 하위로 밀렸으나 수비 기본기가 좋았다. 다만 타격 면에서 아쉬움이 있어 데뷔 초기에는 중용되지 못했다. 지난 시즌에는 생애 처음으로 1루 수비 출장하며 기량을 쌓아갔으나 타격 성적은 55경기 1할8푼5리 1홈런 6타점으로 아쉬움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현재 홍재호는 시즌 초반이지만 15경기 3할9푼1리(23타수 9안타) 1홈런 6타점을 기록하며 타격 면에서도 일취월장했다. 군입대를 미루고 달려드는 데뷔 후 네 번째 시즌 활약이 웬만한 내야 백업 요원 그 이상이다. 25일 마산 NC전에서는 상대 선발 아담 윌크를 초반부터 흔드는 선제 결승 좌월 스리런으로 파괴력도 과시한 홍재호다.
1일 경기 전 선동렬 감독은 시즌 전 야수진 백업에 대한 약점을 지적받았던 것을 상기하며 “지금 그 부분은 약점이 아니다. 홍재호와 박기남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좋은 주전 선수가 있더라도 부상과 슬럼프가 불시에 찾아올 수 있는 만큼 강력한 백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홍재호는 바로 KIA의 가려운 그 부분을 긁어주고 있다.
데뷔 초기부터 본 홍재호는 야구 욕심도 많고 근성도 대단한 선수였다. “김선빈, 안치홍 등 주전으로 나서는 후배들은 정말 절친한 선수들이다. 그러나 야구까지 양보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언젠가 주축 선수로서 선빈이, 치홍이 못지 않게 팀에 도움을 주고 싶다”라는 것이 홍재호의 목표. 본의 아닌 몸개그를 펼쳤으나 홍재호는 선두를 달리는 KIA의 귀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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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백승철 기자 farinell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