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야, 씩씩하게 던져라. 오늘 슬라이더 기대한다”.
2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유필선 두산 베어스 전력분석원은 가방을 메고 라커룸으로 향한, 학생티가 물씬 나는 청년에게 기를 불어넣었다. 청년은 다소 긴장한 표정에도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라커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기회라는 열매를 따냈다. 두산 베어스 3년차 우완 이정호(21)는 자신의 야구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다.
이정호는 2일 잠실 KIA전에 선발로 나서 5⅓이닝 3피안타(탈삼진 4개) 무사사구 2실점으로 좋은 내용을 보여줬다. 2-0으로 앞선 6회초 1사 1,3루서 좌완 유희관에게 마운드를 넘긴 이정호는 승계 주자 안치홍, 이용규가 모두 홈을 밟으며 최종 실점 2점으로 개인 최다 이닝 투구 경기를 마쳤다. 동점 허용으로 승리 요건은 날아갔으나 전체적인 투구 내용이 신출내기 답지 않았다.

사이드암으로 입단했으나 구속과 제구를 높이기 위해 팔 각도를 다소 올리며 스리쿼터형으로 바꾼 이정호는 이날 최고 143km의 직구와 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싱커를 섞어 던졌다. 주가 된 투구 패턴은 직구-슬라이더. 슬라이더 31개 중 볼이 14개로 제구가 안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대신 투구의 가장 기본이 된 직구가 45개 중 스트라이크 31개, 볼 14개로 안정적으로 날아갔다.
무엇보다 이제 겨우 1군에서 4경기 째에 출장한 선수가 자기 공을 떨지 않고 제대로 던졌다는 점이 중요했다. 상대 선발은 KIA 에이스 중 한 명인 김진우. 승세가 기울어졌다고 보는 순간 이정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던져 팀이 역전승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정호가 버티지 못했다면 두산은 자칫 안방에서 스윕당할 수 있었다.
유망주가 갑자기 뛰쳐나오는 두산을 가리켜 화수분 야구로도 불렀다. 그런데 여기서 배출된 수혜자들을 보면 대부분 좋은 기량은 물론이고 성실함, 과감한 승부 근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정호는 스스로 호투를 펼치며 단박에 화수분 야구 시즌2의 총아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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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