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 정도는 돼야 슬럼프지. 나 같은 선수는 그냥 부진이라고 하면 된다."
삼성과 롯데의 경기를 앞둔 3일 사직구장. 삼성 류중일(50) 감독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어떻게 회복하냐는 질문에 "승엽이 정도 되는 대스타는 슬럼프가 있다. 근데 나 같은 선수는 슬럼프가 아니라 그냥 부진한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류 감독은 "무조건 연습밖에 답이 없다. 다만 훈련 방식을 조금씩 바꿔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달리기를 더 많이 한다던지, 아니면 웨이트 트레이닝 무게를 바꿔가며 하는 식으로 기존 하던 것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감이 돌아온다"고 했다.

갑자기 슬럼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승엽(37) 때문이다. 이승엽은 시즌 초반 2할대 초반 타율에 머무르며 좀처럼 타격 컨디션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타점은 18타점으로 팀 내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타율은 좀처럼 오를 줄 모른다.
이승엽의 부진에도 류 감독은 그를 꾸준히 3번 타순에 기용한다. 실력이 있는 선수인만큼 언젠가는 컨디션을 되찾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현역 시절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류 감독은 1999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는데 당시 삼성은 서정환 감독이 지휘봉을 쥐고 있었다. "그때 하도 안 맞으니까 서정환 감독님이 내 방망이 가운데 눈을 그려 주시더라. 눈으로 보고 (그림을 그린) 그 곳에 공을 맞히라는 이야기"라는 것이 류 감독의 설명이다. 1999년 류 감독은 타율 2할3푼3리를 기록하고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과거를 회상하던 류 감독은 "승엽이 방망이에 눈이라도 그려 줘야겠다. 방망이 어디있노"라고 농담을 했다. 결국 눈을 그리지는 못했지만 이승엽은 3일 경기에서 1회 적시타 포함 3타수 1안타 2볼넷 1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올 시즌 처음으로 한 경기에서 볼넷 두 개를 골라내 선구안을 되찾은 모습을 보여줬다.
삼성은 현재 팀 타율 2할9푼4리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톱타자 배영섭이 최고의 컨디션을 뽐내고 있는 가운데 3번 타순에서 이승엽만 살아나면 무결점 타선이 된다. 슬럼프 탈출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이승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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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형준 기자,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