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해일이 엄청난 '가족'과 함께 스크린에 돌아온다.
박해일이 새롭게 관객들을 만나는 작품은 송해성 감독의 '고령화 가족'(9일 개봉). 영화는 평화롭던 엄마 집에 나이 값 못하는 가족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소녀같은 엄마 윤여정, 집에 빈대 붙어 사는 철없는 백수 첫째 '한모' 윤제문, 흥행참패 영화감독 둘째 '인모' 박해일, 결혼만 세 번째에다 오빠들에게 '상욕'을 날리는 셋째 '미연' 공효진, 이런 미연을 쏙 빼 닮아 되바라진 성격의 여중생 민경 진지희까지, 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여기저기 터지고 박살나고 깨진다.
스크린 속 박해일은 외모에서부터 표정, 행동 하나하나까지 인모를 그대로 흡수한 듯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이 작품은 지난 해 10월부터 3개월 반 동안 찍은 작품. 전작 '은교'의 특수분장과는 다르게 모든 게 30분이면 다 됐다. "분장은 편하고 의상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가벼운 마음으로 하려고 했어요. 여러 가지로 인모란 인물이 안 풀리기도 하고 먹먹한 과거도 있긴 한데 무겁게 가져가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감독님과 함께 전체적으로 유쾌하고 경쾌하게 해 보자고 했습니다."
매번 다르고 강렬한 캐릭터을 연기하는 박해일이다. 이번 작품은 어디에서 매력을 느꼈을까. 그는 "우선은 일단 읽었을 때 잘 읽혔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이 누가될까 굉장히 기대와 궁금증을 갖게 했다. 누가 이 역을 연기할 지 그 배우가 굉장히 궁금했다"라고 대답했다.
송 감독과 얘기를 나누다가 박해일이 직접 윤제문이 한모 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추천했단다. 윤제문과는 지난 1999년 4월부터 연극 '청춘예찬'을 1년 정도 장기적으로 함께 한 사이다. 영화 '괴물', '나는 공무원이다'에서도 짧게 짧게 만난 적이 있다.
윤제문과의 호흡에 대해 물었다. "정말 예상한 대로 즐겁게 찍었습니다. '아' 하면 '어' 했죠. 눈빛만으로도 어느 정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에요. 예전 경험이 있으니까요. 윤여정 선배님도 정말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서 좋았고 공효진 씨랑은 치고 받고 남매가 어떤 관계보다 더 잘 어울렸다고 생각해요. (다음에 연인으로 만나는 건 어때요?) 좋죠. 어떤 작품에서든 또 만나지 않을까요. 하하."
이어 이런저런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가 '늑대인간' 같은 캐릭터를 연기 해 보고 싶지는 않냐고 툭 묻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사극인데, 외계인이 나타나는 거다. 조선시대 선비가 이 외계인을 만나 '뉘시오'라고 말하면 외계인이 '우엥'(외계인 목소리)이라며 뭐라고 대답한다. 이런 모습들이 재미있지 않을까?"라며 눈을 반짝였다. 사뭇 진지한 듯 영화적 상상력을 펼치는 그의 모습에서 앞으로 그가 어떤 새로운 모습을 더욱 많이 보여줄 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인모는 영화 후반부 형 한모에 대한 애정을 깨닫게 되고 그를 위해 대단한 결심을 한다. 깡패들에게 잡혀가 구타당하면서 인모가 내뱉는 사회를 향한 일장 연설, 일명 '연설신'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것 같은 분위기인거죠. 인모는 집안에서 나름 고학력자라고 하는 사람인 것도 있고, 감독님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을 인모를 통해 하신 것 같아요. 무슨 생각으로 (대사를)해야할 지 애매했는데 하고 나니 후련하더라고요. 실제 촬영할 때는 좀 더 많이 맞았는데 무거워질 것 같이 많이 편집했어요. 내가 영화 인생 중에서 그런 대사를 했나, 싶을 정도네요. 낯설지만 매력적이었던 대사들이에요."
가장 인상깊은 몇 마디를 해 달라 하자 잠깐 정적이 흘렀다. 이내 그의 대답 "그 때는 어떻게든 해냈는데..일은 일인거구나 싶네요. 제가 건망증이 심합니다." 폭소가 터졌다.
실제 그의 가족 관계에 대해 물었다. 영화 속 인모와는 달리 다섯 살 많은 누나가 한 명 있단다. 누나와 남동생의 관계에 대해 묻자 그는 "남동생은 어릴 때 많이 구박받다가 크면 대든다. 누나보다 힘이 세 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누나가 불쌍하다"란 말을 하자 "아니, 어릴 때 많이 당한다니까"라고 발끈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어렸을 때는 누나가 심부름도 많이 시키고 TV 채널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랬죠. 하지만 나이가 들고, 같이 나이먹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면 정말 건강하길 바라고 잘 살길 바라고 그러는 거죠."
실제로 영화 속 캐릭터들과 같은 가족과 살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는 "나 같으면 (재미있어서) 시간 잘 갈 것 같은데?"라며 웃어보였다. "솔직히 그 가족들의 고충을 잘 모르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걱정도 있겠지만 좋은 점도 많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확실히 '고령화가족' 속 가족들에게 푹 빠진 모습이다.
영화 속에는 박해일과 윤제문의 올 누드신도 등장한다. 목욕탕에서 등장하는 아슬아슬한 노출이다. 이에 대해 박해일은 "공사를 하긴 했는데 안 되는 부분이 있어 기술적인 것의 도움을 받았다. 원 신 원 컷 촬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나도 목욕탕 신은 처음이었다. 윤제문 선배가 때를 쫙쫙 밀어주는 장면이었는데, 힘을 주면 줄 수록 때가 더 나을 것 같아 긴장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 한모와 인모는 윤제문-박해일이 아니라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조화를 선보인다.
그러고보니 최근 작품만 따져보면 언젠가부터 여배우와 이성적인 관계가 없었다고 말했다. '은교'의 은교도 여자친구는 아니었고, '최종병기 활'의 문채원은 여동생이었다. '심장이 뛴다'에서 김윤진과는 서로 대립해 싸웠고, '이끼'에서는 아예 상대 여배우가 없었다. 그 만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연애의 목적'의 강혜정과의 케미를 아직도 강하게 기억하고 있는 팬들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도 있을 터.
이 얘기에 그는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라며 "다음에는 여자친구 역을 맡아볼까?"란 농담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으로 배우로서 다른 배우들과 '가족'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큰 재미와 매력을 느낀 그다.
많은 여배우들이 줄곧 박해일과 함께 작품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박해일은 "그 분들과 가족으로 만나고 싶다. 연인 관계도 있지만 가족은 촬영 외적으로도 그 유대 관계가 이어진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니 편안한 말투를 쓰고 좀 더 유연해 지더라. 캐릭터에 몰입을 해도 관계에 따라 다른데, 가족들이다 보니 일상적이고 풀어지는 느낌이다. 가족이란 포지션 안에서 배우들은 가림없이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되게 재미있는 시점이다." 앞으로 박해일과 가족으로 만날 배우는 또 누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주연배우로서 영화의 관전포인트에 대해 물었다.
"송해성 감독님이 아주 잘 할 수 있는 드라마적 감성, 배우들을 통해 메시지를 표현하는 탁월한 솜씨, '고령화 가족'만의 느낌을 즐기면 될 것 같아요. 가족으로 나오는 배우들의 일상적인 연기를 즐기면 웃음을 머금고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가족은 어떨까, 우리 가족도 비밀이 있을까?'란 생각을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형제, 자매, 남매들에게 그런 대입을 해볼 수 있는 지점이 재미있을 거에요.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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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