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웨이, 양조위가 주연을 맡은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가 개봉했을 때 많은 이들이 배우의 몸을 이용해 어떻게 사람 사이의 미묘한 권력 관계를 그려낼 수 있는가를 목격하며 전율했다. 상당히 노출 수위가 높은 이 영화를 야한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출 연기가 아무리 수위가 높아도 '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영화가 그 메시지를 몸으로 잘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최근 최승호 감독의 영화 '노리개'가 화제였다. 신인배우 민지현은 과감한 노출 연기를 감행해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영화 속 민지현의 모습은 어떤 성적인 감흥보다는 공포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권력에게 희생당하는 약자의 모습, 그 충격적인 장면은 그의 몸보다 깊은 절망에 사로잡힌 표정을 주목하게 만든다.
영화는 연예계 성상납이라는 소재를 위해 여배우의 몸을 활용했다. 젊은 여성의 몸은 철저히 권력층의 노리개가 되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 하지만 민지현은 분노, 절망, 희망, 슬픔 등이 뒤엉킨 감정연기로 관객들에게 몸만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신인으로서는 힘들 수 있는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는 평. 본인 역시 노출 연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힘들었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최근 배우의 온몸 연기로 주목받는 영화는 스티브 맥퀸 감독의 '셰임'이다. 아시아 주요 국가 지역 내에서 유일하게 한국만이 무삭제, 무수정 개봉하는 '셰임'은 몸으로 인간의 수치심을 면밀하게 드러낸다.

'셰임'은 배우의 노출도 분명 연기의 한 부분임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영화다. 주인공인 영국 출신 배우 마이클 파스벤더는 어떤 블러 처리 없이 온 몸을 장시간 그대로 스크린에 투영시킨다. 조각같이 잘 다듬어진 몸매는 매혹적이지만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맨살에서 관객은 어떤 자극적인 감상보다는 깊은 절망을 느낄 수 있다.
브랜든(마이클 파스벤더)은 단 번에 여자를 홀리게 만들 만한 멋진 외모와 젠틀한 매너, 그리고 일적인 부분에서도 유능함을 겸비한 완벽한 뉴요커다. 좋은 집에 살고 부족함 없이 생활하는 도시남. 하지만 그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는 섹스 중독으로 24시간 괴로워하며 자기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 한다. 그의 컴퓨터는 온갖 난잡한 영상들로 가득 차 있고, 직장 화장실에서도 수시로 마스터베이션을 한다. 지하철에서 끈적한 눈빛을 보내는 여자에게 성욕을 느껴 뒤쫓아나가고, 수많은 여성과 일회적인 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그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점점 더 허무해질 뿐이다.
영화에서 섹스 중독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브랜든은 정작 호감을 갖고 만난 여성과 데이트를 하면서도 육체적으로 진지한 관계를 나누지 못한다. 누가 누군가를 만나 유대관계를 맺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브랜든은 점점 더 센 자극이 필요한 자신에게 고통스러워하면서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고뇌하고 번민한다.
영화의 주제를 완성하는 또 다른 인물인 브랜든의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 역시 전라 노출을 불사하며 브랜든과 반대로 애정결핍자처럼 관계에 집착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유대관계에 목말라 하는 캐릭터를 그려냈다. 파스벤더는 카메라 앞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자신을 발가벗기지만 그 이미지는 야하긴 커녕 건조하고 절망적이다. 배우 노출에 대한 감상은 이처럼 그 메시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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