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청부사에서 다시 이적생으로.
KIA에서 SK 유니폼을 입은 김상현의 야구인생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잠재력을 갖췄지만 주전경쟁에서 밀려나 LG로 떠밀리듯 이적했다. 다시 주전자리를 찾지 못해 친정 KIA로 돌아와 우승 청부사 노릇을 했다. 그러나 다시 이적생의 신분이 되었다.
김상현은 고졸선수로 2차지명 6순위로 지난 2000년 해태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정성훈에 밀려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01시즌을 마치고 떠밀리듯 LG로 이적했다. 오른손 거포가 필요했던 LG는 그를 중심타자로 키우려했지만 실력은 늘지 않았다.

상무를 거쳐 여러번 기회를 부여받고도 자리를 잡지 못하자 2009년 친정 KIA로 이적했다. 당시도 정성훈이 FA 입단해 3루수 김상현의 자리는 없었다. 2009년 4월 19일 KIA 투수 강철민과 교환되어 박기남과 함께 친정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그는 곧바로 주전 3루수로 나섰고 홈런포를 펑펑 날리기 시작했다. 결국 최희섭과 함께 공포의 CK구축했고 36홈런, 127타점을 올렸다. 33홈런 100타점을 거두어들인 최희섭과 함께 우승 일등공신이었다. 페넌트레이스 MVP에 오르며 2군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팬들은 그에게 우승청부사라는 직함을 부여했다.
그 다음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릎 수술 후유증속에서도 이듬해 2010년 21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1시즌을 앞두고 전지훈련 도중 소프트뱅크 이범호의 영입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이 말은 3루 자리를 빼앗기고 외야로 전업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2011시즌과 2012시즌은 부상과 부진의 연속이었다. 특히 2011시즌은 이범호와 최희섭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아픈 몸인데도 출장을 감행했고 결국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었다. 2012 시즌에는 팀 포지션 역학구도 때문에 1루수로 전업하려다 다시 외야수로 돌아갔고 역시 부상으로 풀타임 소화에 실패했다.
올시즌을 앞두고 재기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롯데 FA 김주찬의 영입소식이 들려왔다. 이용규 김주찬 나지완 김원섭 신종길까지 외야는 넘쳐났다. 결국 자신의 이름을 개막전 선발출전 명단에 올리지 못하는 등 험난한 시즌을 예고했다. 김원섭의 부진으로 기회를 받았지만 불펜 강화를 위한 고육책 카드로 팀을 떠나야 했다.
김상현은 친정 KIA에 애정이 많았다. 2009년 빅뱅의 이유도 돌아오고 싶었던 친정이었고 벼랑 끝에 몰린 절실함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다시는 KIA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승청부사 김상현에게는 냉엄한 현실이 닥쳐왔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출발선에 다시 설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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