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투수는 연패를 끊고 연승을 잇는다. 경기 승패를 예측하는 첫 번째 요소로 선발투수를 꼽는 이유도 앞서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9개 구단 외국인선수 19명 중 18명이 선발투수인 것만 봐도 선발투수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팀들은 전력 구상의 밑바탕을 두 자릿수 승을 올리는 외국인 선발투수로 잡는다. 외국인 선발투수라면 10승 이상은 해야 팀이 계획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LG는 적어도 지난 2년 동안에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이 없었다. 2011시즌부터 한국 무대를 밟은 레다메스 리즈와 벤자민 주키치는 나란히 10승 이상을 올리고 160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외국인 선발 듀오 모두 풀타임을 소화하고 두 자릿수 승을 올린 것은 LG 구단 통산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LG는 둘의 재계약을 추진했고 올 시즌까지 리즈와 주키치는 LG 유니폼을 입고 있다.
지난 시즌의 경우, 리즈와 주키치 모두 일장일단이었다. 2012시즌 개막을 뜻하지 않게 마무리투수로 맞이한 리즈는 3주 동안 방황했지만 선발투수로 돌아와 2011시즌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단순히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에서 마운드를 자신의 의도대로 운용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주키치는 전반기까지는 리그 최고 투수였다. 한국 무대 첫 해 좌타자에 약했던 것을 극복, 좌우타자 가리지 않고 마운드를 지배했다. 전반기에만 이미 9승을 올리며 가볍게 15승 이상을 거둘 것 같았다. 하지만 후반기 구위와 제구 모두 흔들리며 2승에 그쳤고 평균자책점 또한 급격히 치솟았다.

올 시즌 둘을 향한 기대치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리즈는 성장세를 유지해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가 될 것 같았고, 주키치 역시 겨울 내내 개인 훈련에 열중하며 체력적인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 정상 컨디션의 두 투수라면, 통합 25승 이상은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시즌 개막에 앞서 LG의 최대 강점을 ‘검증된 외국인 듀오’로 꼽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비록 이제 겨우 27경기, 시즌 전체 일정에 21%만을 소화했지만 리즈와 주키치는 예상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리즈가 7경기, 주키치가 6경기 선발 등판한 가운데 각각 2승 4패 평균자책점 3.86, 1승 3패 평균자책점 5.18을 기록 중이다. 선발투수 호투에 최소 기준이라 할 수 있는 퀄리티스타트도 통합 7번에 그치고 있다.
지난 2년을 돌아보면 리즈는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2011시즌과 2012시즌 전반기 평균자책점 4.30을 올렸던 리즈는 후반기에는 3.14로 몇 단계 나은 투수가 됐다. 시즌 초 추운 날씨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곤 했는데 올 시즌 부진도 똑같이 해석할 수 있다. 직구 구속 또한 꾸준히 150km 이상을 찍고 있고 변화구 제구도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이뤄진다. 때문에 끝까지 팀 승리를 지키는 특급 에이스의 모습은 아닐지 몰라도, 지난 2년의 평균치는 해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주키치다. 주키치는 리즈와 반대로 전반기가 후반기보다 좋았다. 지난 2년 동안 전반기 평균자책점 3.09, 후반기에는 평균자책점 4.30을 찍었다. 주무기 컷패스트볼이 상대 타자의 몸쪽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는 날에는 그야말로 언터처블이었다. 지난 시즌 초반에는 체인지업의 각도도 이전보다 크게 형성되면서 마음껏 상대 타자들을 요리했다.
올 시즌은 시작부터 부진하고 투구 내용도 많이 다르다.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심심치 않게 145km 이상을 찍으며 몸 상태는 매우 좋아 보이지만 구속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평균자책점 외에 WHIP(이닝당 출루 허용율)도 1.45로 지난 두 시즌보다 높다.
이전에 주키치의 공을 받아본 포수 A는 “분명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은 이전보다 빠른데 컷패스트볼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2년 동안 한국에서 뛴 만큼 이제는 한국 타자들이 주키치의 공이 눈에 익고 패턴을 예측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다. 한 번 흔들리면 그대로 무너질 확률이 높은 주키치의 습성을 이제는 다른 팀 선수들이 모두 알만하다”고 주키치의 부진 원인을 분석했다.
포수 B는 조금 다른 의견이었다. B는 “올 시즌 주키치의 모든 투구를 보지는 못했지만 주키치가 너무 혼자 마운드를 운용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포수와 호흡을 맞추기보다는 구위가 좋아진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역효과를 낳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주키치는 포수가 편하게 맞춰주는 만큼 좋은 투구를 펼친다. 컷패스트볼이 좋아도 컷패스트볼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보다는 매 경기, 2이닝씩 컨셉을 바꾸면서 변화를 주고 포수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호투한 경우가 많았다. 투수는 마운드 위에서의 심리상태가 중요한데 주키치 역시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투수다”고 말했다.
두 투수의 부진한 성적이 투수 교체 타이밍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리즈는 지난 4월 24일 잠실 삼성전에서 투구수가 100개에 가까워 질 때쯤 두 번 연속으로 몸에 맞는 볼을 기록했고 교체된 후 상대의 역전타가 실점하고 패전투수가 됐다. 지난 5일 잠실 두산전도 6회말 교체 후 후속 투수의 제구난조와 적시타 허용으로 같은 결과가 나왔다. 주키치 역시 4월 7일 잠실 두산전과 4월 25일 잠실 삼성전에서 투구수가 100개 내외가 되자 흔들렸고 결국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리즈는 지난 두 시즌과 똑같은 선발 등판시 경기당 평균 5⅔이닝을 소화 중이다. 주키치가 5⅓이닝으로 이전보다 이닝을 길게 끌고 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투구수에선 차이가 크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두 투수의 역량이 지난 두 시즌보다 못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LG 김기태 감독은 지난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 휴식을 취한 후 리즈와 주키치를 붙여서 등판시키고 있다. 둘을 붙여 놓으면 둘 중 한 명은 오는 12일까지 일주일에 꼬박 두 번씩 등판하고 둘은 총 8번 마운드에 오른다. 즉, 다음주 4일 휴식이 올 때까지 최대한 리즈와 주키치를 많이 내보내 승리를 챙기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지금까지 총 5번의 선발 등판서 리즈와 주키치 모두 승수를 쌓지 못했고 LG도 경기를 내줬다.
프로 세계의 비즈니스는 외국인 선수에게 훨씬 냉혹하게 적용된다.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는 외국인 투수는 팀에 남을 수 없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리즈와 주키치가 빨리 제자리를 잡고 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둘이 LG 유니폼을 입기 전 LG의 외국인 선수 잔혹사를 돌아보면, 수준급 외국인 투수가 온다고 보장할 수 없다. LG의 선수층은 두텁지 않다. 외국인 선수가 부진해서 생긴 빈틈을 국내 선수들로는 메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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