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많이 상했다".
한화 외야수 정현석(29)은 지난 7일 마산 NC전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3-4로 뒤진 8회초 무사 만루에서 2루 내야 뜬공으로 물러나 추격 흐름에서 찬물을 끼얹으며 아쉬움을 삼켰지만, 4-4 동점이 된 9회초 2사 만루에서는 좌중간을 꿰뚫는 결승 2타점 2루타를 작렬시키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나 경기 후 정현석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그는 "요즘 찬스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8회에서 만루찬스를 살리지 못했다"며 자책한 뒤 "9회 만루에서는 한 점이 필요한 상황이라 크게 치기 보다는 정확하게 치는데 주력했다. 그 이전에 결과가 안 좋았던 만큼 후회없이 내 스윙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최근에 자신감이 만이 떨어져 있었다. 팀에서 기대를 많이 하고, 코칭스태프에서도 꾸준히 기용해주시며 기회를 계속 주셨다. 그러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탓했다. 실제로 정현석은 올해 한화의 중견수이자 중심타선을 뒷받침하는 6번타자로 공수의 핵심 키플레이어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시즌 뚜껑을 열어 보니 기대치를 밑돌았다. 27경기에서 95타수 26안타 타율 2할7푼4리 6타점을 기록했으나 임팩트가 떨어졌다. 외야 수비에서도 몇 차례 허점을 보였다. 경찰청에서 2군 퓨처스리그를 지배하며 업그레이드된 정현석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았기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아쉬움이 커져만 갔다.
정현석 스스로가 가장 아쉬워한 건 득점권에서 찬스를 살리지 못한 점이었다. 그는 "아마도 우리팀 경기를 많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경기를 바꿀 만한 상황이 많았는데 그걸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팀에 제대로 도움이 되지 못하다 보니 자신감도 점점 떨어졌고, 스스로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털어놓았다.
정현석은 올해 득점권에서 28타수 6안타로, 타율이 2할1푼4리밖에 되지 않는다. 주자가 없을 때에는 48타수 16안타로 타율 3할3푼3리로 강했지만, 주자가 있을 때에는 47타수 10안타로 타율이 2할1푼3리까지 뚝 떨어졌다. 이상하리 만큼 찬스 때마다 방망이가 터지지 않았고 스스로도 답답함이 가중돼 있었다.
하지만 이날 한 방으로 그간의 체증을 한 번에 뚫었다. 하지만 정현석의 눈빛은 비장했다. 그는 "오늘 한 경기를 이겼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걸로 지금까지 나 자신에게 화난 것이 가라앉지는 않는다. 오늘도 첫 만루 찬스를 살리지 못해 너무 분했다. 한 경기로 만족하지 않겠다. 후회없이 내 스윙을 하고 싶다"고 스스로를 더 강하게 조였다. 심적인 부담에서 벗어난 정현석에게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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