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이제 월드스타로 올라선 싸이의 신곡 '젠틀맨'의 뮤직비디오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자체 규정까지 어겨가며 부적격 판정을 내렸던 KBS가 결국 재심의에서도 방송 부적격으로 판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중의 생각은 달랐다.
7일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1005명에게 '젠틀맨' 방송 부적격 판정에 대한 적절성 여부를 물은 결과, 47%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적절하다'는 대답은 30%였고 나머지 23%가 '모르겠다'고 의견을 유보했다. 아마도 대중은 KBS의 폐쇄적인 시각이나 혹은 YG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감정적인 앙금을 염두에 둔 모양이다.
6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적절하다'보다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30대에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61%로 가장 많았다. 이는 젊은층은 '젠틀맨' 뮤직비디오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KBS의 공익성에 어긋난다는 판단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젠틀맨' 뮤직비디오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740명) 중에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54%)이 많았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265명) 중에서는 적절하다는 의견(32%)이 부적절하다는 의견(26%)보다 많았다. 이는 60세 이상의 고연령층이 뮤직비디오를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KBS라는 공영방송사의 이름만 믿고 무조건 그 판정에 긍정적인 의견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언론이 나이든 고지식한 연령층에 끼치는 영향력을 입증한 셈이다.
KBS가 '젠틀맨' 뮤직비디오를 틀건 안틀건 이미 보고 싶은 사람은 다 봤다. 전세계의 싸이 팬들도 앞다퉈 유튜브를 조회하며 '젠틀맨'의 뮤직비디오를 즐기는 가운데 다양한 패러디물까지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KBS가 이 뮤직비디오를 외면하더라도 음원 판매나 인기도에는 별로 영향이 없다. 어차피 싸이는 요즘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외국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으며 KBS 출연을 일부러 애써 하겠다는 의도도 없어 보인다.
각 방송사들은 저마다의 심의기준을 보유하고 있다. 방송사가 자신들만의 규정대로 방송가능과 불가를 가름하는 것에 대해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그것은 국지적인 문제이므로 내정간섭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냉엄한 잣대로 대중컨텐츠의 방송여부를 결정하는 내부적 지침도 인정한다.
하지만 '젠틀맨' 뮤직비디오가 마치 유해콘텐츠인 것처럼 왜곡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게다가 과연 KBS2가 민영방송인 SBS와 차별화되는 점이 뭣인지, 과연 그들이 표방하는 공영방송으로서의 품위와 성격에 맞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만약 '젠틀맨'의 뮤직비디오를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배경처럼 KBS2가 무공해 청정방송인지 묻고 싶다. 이 채널은 SBS나 MBC와 다름 없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막장식 드라마나 연예인 신변잡기 늘어놓기 식의 예능 프로그램을 안 내보낸단 말인가?
KBS가 '젠틀맨' 뮤직비디오에서 문제 삼는 것은 싸이가 주차금지 푯말이 적힌 플라스틱 봉을 발로 차는 장면이다. 우리나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비해 과하게 많은 차량들로 인해 주차문제가 심각하기로 악명이 높다. 뮤직비디오에서 싸이가 그런 행동을 보였다고 해서 그게 중죄이고 남에게 큰 피해를 입힐까?
발로 슬쩍 찬다고 해서 파손되지도 않는 플라스틱 봉이고 그것은 공적인 표지판인지, 아니면 사설 표지판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주차문제로 골치를 썩히는 수많은 오너들에게 그 정도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애교가 아닐까?
게다가 싸이의 컨텐츠는 대표적인 B급문화다. 싸이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그가 표방하는 음악과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솔직함과 당당함 그리고 '즐기자'는 주의다.
싸이의 콘서트는 자유분방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싸이의 콘서트에서 사고가 났다는 보도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관객들이 싸이의 콘서트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들뜬 감정을 표현하며 그 순간을 즐기고 그래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싸이라는 뮤지션과 그의 음악이 갖는 값어치는 충분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시장에서 싸이의 덕을 톡톡히 보는 것이다.
싸이가 부적절한 대체복무로 군대를 두 번 갔다 왔건, 그가 잘 사는 집안의 엄친아건 그것은 뮤지션 싸이를 논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의 음악과 뮤직비디오 그리고 춤에 전세계가 열광하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며 다른 각종 문화 컨텐츠에까지 좋은 영향을 끼치며 외화벌이에 한몫 하는 것만으로도 국가적으로 싸이를 보호함은 물론 그를 지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운동선수의 군복무는 면제해주면서 싸이같은 월드스타의 애교는 왜 예쁘게 봐줄 수 없는가? 이건 고지식하고 편협한 구시대적 사고방식 혹은 지나친 아집으로 바라본 편견과 질시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1950~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가 하체를 심하게 흔들자 미국의 지상파 방송은 그의 상체만 방송에 내보내는 것으로 타협했다. 마이클 잭슨은 전성기 때 한 손을 주요 부위에 얹고 골반을 심하게 흔드는 춤으로 전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미국에서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방송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