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8일 두산 베어스는 문학구장에서 잊지 못할 치욕을 당했다.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경기 초반 타선이 폭발하며 11-1까지 앞서갔지만 추격을 허용, 결국 9회 12-13으로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10점 차 역전패는 한국 프로야구 32년 역사상 처음 나오는 기록이다.
9일 두산과 SK의 경기에 앞서 문학구장에서 만난 두산 김진욱 감독은 "어제(8일) 투수교체가 아쉬웠다"고 인정했다. 전날 두산은 신예 이정호가 선발로 나서 5회까지 2실점으로 잘 막았고, 타선도 폭발해 11-2로 앞서갔다. 하지만 6회 한계 투구수에 가까워진 이정호는 구위가 떨어져 SK 타선에 집중타를 허용한다. 당시 두산 벤치에서는 이정호를 밀고 나가다가 4실점을 하자 그제야 홍상삼을 투입한다.
6회가 끝났을 당시 스코어는 11-6, 다섯 점 앞서던 두산이었지만 결국 SK에 야금야금 점수를 내주고 말았다. 때문에 김 감독은 "정호가 5회까지 80개 던졌는데 뒤에 투수를 아끼려는 생각에 6회까지 맡기려 했다. 여기서 교체 타이밍을 놓쳤다"고 인정했다.

최근 두산은 불펜진에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선발투수가 일찍 내려가는 경기가 잦아진 것이 이유다. 여기에 대해 김 감독은 "사실 현택이와 진수는 안 쓰려고 했다. 그게 어제 경기 시발점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그 만큼 최근 두산 불펜은 상황이 여의치 않다. 전날 경기와 같은 큰 점수차에서 선발을 길게 끌고가고자 하는 김 감독의 선택은 결과가 나빴지만 정석에 가깝다.
두산 타선은 전날 패배에 분풀이라도 하듯 SK 선발 레이예스를 신나게 두들겼다. 레이예스는 결국 4이닝 11피안타 9실점, 올 시즌 최악의 피칭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마침 선발 김선우도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두산은 9-0으로 크게 앞서갔다.
보통같은 경우에는 9-0 정도라면 편하게 마운드를 운용할 수 있는 스코어다. 그렇지만 전날 SK에 크게 한 번 데였던 두산은 철저하게 상대 타선을 봉쇄하는 마운드 운영을 보여줬다. 일단 호투하던 김선우를 예상보다 일찍 내렸다. 김선우는 큰 위기없이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투구수도 67개로 적었다.
그리고 두산의 선택은 유희관이었다. 추격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겠다는 두산 코칭스태프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산 좌완 핵심 필승조인 유희관은 첫 두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그러자 두산 정명원 투수코치는 곧바로 마운드에 올라가 유희관을 다독였다. 마치 박빙에서 위기에 처한 불펜투수를 달래는 듯한 몸짓도 보였다.
유희관은 6회 2실점을 하긴 했지만 2⅓이닝 2실점으로 SK에 전날과 같은 추격의 빌미를 주지 않았다. 평소였으면 이날 1군에 등록된 윤명준에게 등판 기회를 줄 법했지만 유희관은 6회부터 8회 1사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이어 등판한 변진수는 1⅔이닝 무실점으로 전날 아웃카운트 없이 4실점을 한 치욕을 씻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 두산은 주중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11-2로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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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형준 기자,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