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이하 ‘천명’)의 길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사극에서 심심치 않게 다뤄졌던 의학이라는 소재와, 누명을 쓰고 쫓기는 도망자 신분의 주인공, 이런데 꼭 빠지지 않는 정치적 음모와 어둠의 세력 등 왠지 여러 인기 작품들을 교묘하게 뒤섞어 놓은 듯한 ‘뻔한’ 소재가 시청자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기 때문.
하지만 이 드라마, 단 6회 만에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면서 인기상승 곡선을 그린다. 연기 도전 후 첫 사극에 도전한 그룹 2AM 멤버 임슬옹의 연기도 예상외 호평이고, 최원(이동욱 분)의 딸 최랑(김유빈 분)의 귀여움은 극한에 치닫는다. 오죽하면 불치병 심비혈허(백혈병)를 앓고 있는 최랑에게 ‘닥터진’(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MBC 의학사극, 송승헌이 현대에서 조선시대로 시간이동한 의사 진혁으로 등장했음)이라도 보내주고 싶다는 말이 나올까.
여기에 덧입혀진 제작진의 세심한 연출은 더욱 힘을 보탰다. 한국 드라마들이 시간에 쫓겨 거의 실시간으로 촬영한단 걸 알만한 시청자들은 다 아는 현 상황에서 기대 이상으로 공들인 화면구성으로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 몰입을 돕는다.

임슬옹, 아역 김유빈, 그리고 제작진의 연출력 외에 관심 쏠림현상이 과한 곳이 또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하루 온종일 쫓기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바쁜 내의원 의관 최원과 그에게 연심을 품으며 애써 아닌 척, 시크한 척 노력하는 내의원 의녀 홍다인(송지효 분)의 로맨스다.
10일 방송된 ‘천명’ 6회에서 두 사람은 흑석골 도적패의 아지트에서 재회했다. 최원이 누명을 쓰고 잡혔다가 탈옥한 후 첫 재회다. 앞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전 금서고에 함께 갇히며 밀실 공간에서 투닥거리는 로맨스로 보는 이를 설레게 했던 이들은 또 다시 연인이라는 선을 앞에 둔 채 성과 없는 탐색전(?)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홍다인이 “은인에서 정인이 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샀다”는 말을 최원에게 흘리며 겨우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찰나에 두 사람에게 날아든 눈치 없는 수리검은 여지없이 두 사람의 로맨스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캐미(캐미스트리의 준말로 ‘감정의 화학작용’ 이라는 뜻의 신조어)가 돋으려고 하면 누군가에게 발각되고, 수리검이 날아든다. 이 둘도 어지간히 고생이다.
‘마성의 홀아비’라 불릴 법한 치명적인 매력으로 가는 데마다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최원의 존재에 도적패 두목의 외동딸 소백(윤진이 분)마저 마음을 빼앗긴 듯한 장면이 연출돼 3각 러브라인이 예상되는 만큼 두 사람의 로맨스는 향후 더 험난해질 전망.
아마 최원과 홍다인의 로맨스는 마지막 회가 돼서야 꽃피지 않을까 짐작된다. 누명 벗고, 쫓기는 것 좀 끝내면, ‘딸 바보’ 최원이 자신의 딸 최랑을 진정으로 아껴줄 홍다인에게 마음을 열게 되면서 말이다. 그때까지 진전이 별로 없을 듯한 두 사람의 로맨스를 짐작해보니, 여전히 또 답답하다.
작가에게 살짝 말을 건네 본다. “이 두 사람, 후딱 로맨스 좀 줍시다”라고. 흘러나오는 BGM은 휘성의 ‘안되나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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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드라마 '천명'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