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퍼트의 격분, “내가 책임지고 싶었는데”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05.11 06: 01

팬들에게는 그의 욕설 섞인 격분이 생소했을 것이다. 의외로 욕에 능통한 선수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가 욕설까지 서슴지 않으며 화내는 것은 다른 이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경우였다. 열흘 만의 등판을 최고의 호투로 보답하고 싶었던 더스틴 니퍼트(32, 두산 베어스)가 팀 승리가 확정되기까지 화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던 이유다.
니퍼트는 지난 10일 잠실 NC전에 선발로 나서 6⅔이닝 동안 128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탈삼진 11개, 사사구 2개) 3실점 1자책으로 호투했다. 그러나 그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원활한 타선 지원이 이뤄지지 못했고 7회 위기를 넘지 못해 승리 투수가 되는 데는 실패했다. 1경기 11탈삼진은 한국 무대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기록이고 128구도 2011년 9월 13일 잠실 LG전 9이닝 132구 2실점 완투승 이후 최다 투구수다. 말 그대로 역투를 펼친 니퍼트다.
이날 니퍼트는 7회 3실점 후 대노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화가 난 니퍼트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면서 글러브를 내던지고 의자를 발로 차고 더그아웃 뒤편으로 사라졌다. 팬들에게 젠틀맨 이미지로 알려진 니퍼트였음을 감안하면 충격적으로도 다가왔을 장면이다.

사실 니퍼트는 사적인 편한 자리에서 장난스럽게 욕설을 하는, 정감 가는 스타일의 선수다. 다만 니퍼트가 진심으로 화내며 욕을 했던 경우는 자신 뿐만 아니라 선수들 전체에게 해가 되는 부조리한 현상이 있다거나 자신이 스스로 팀에 확실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외국인 선수임에도 의협심이 강하고 책임감도 대단한 니퍼트다.
허경민의 실책이 겹치며 실점이 늘어나기도 했으나 원래 니퍼트는 야수를 탓하는 투수가 아니다. 지난해 후반기 승운이 따르지 않았을 때도 니퍼트는 “타격은 사이클이 있게 마련이다. 다만 내가 고비를 넘지 못해 집중타를 맞아 팀을 힘들게 하는 것은 싫다”라며 자책 섞인 욕설을 하기도 했다. 두산 구단과 선수단이 니퍼트를 진정한 팀원으로 인정하는 이유다. 책임을 회피하고 다른 이에게 전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승리하지 못했으나 니퍼트의 10일 투구는 뛰어났다. 최고 152km의 빠른 직구는 물론 투심-슬라이더-체인지업-커브 등 다양한 구종을 잘 배합해 던졌다. 첫 해 다소 높은 공으로 타자의 방망이를 끌어내는 파워피처로서 ‘키 큰 오승환(삼성)’으로도 불렸던 니퍼트는 타자 무릎선에 걸치는 제구까지 보여주며 5회까지 노히트로 호투했다. 이기지 못했을 뿐 니퍼트의 투구는 분명 탁월했다.
경기 후 니퍼트는 “열흘 만의 등판임을 감안했을 때 투구 내용은 만족할 만 했다고 생각한다”라며 전체적인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니퍼트는 “다만 최대한 책임지고 싶었는데 7이닝 째를 내 손으로 마무리 하지 못했다. 그 점은 너무 아쉽다”라고 격분의 이유를 밝혔다. 올 시즌 전에도 “내게 승운이 따르지 않더라도 5이닝 동안 통타당하며 이기는 것보다는 7이닝 이상을 내 손으로 소화해 계투 요원들의 과부하를 막는 것이 훨씬 더 영양가 있다”라며 이닝이터로서 책임감을 먼저 앞세운 니퍼트다.
다행히 팀은 7회말부터 집중력을 발휘하며 4-3으로 역전승, 니퍼트를 불운한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았다. 자신의 선발승은 날아갔으나 팀이 리드를 잡은 순간부터 굳었던 표정을 다시 환하게 풀었던 니퍼트. 그는 팬들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책임감도 큰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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