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타선 해킹’ 에릭의 세 가지 변화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05.11 06: 02

승리는 따내지 못했으나 6회까지 노히트 투구를 펼친 쾌투였다. 이전 경기까지 3패 평균자책점 7.11에 그쳤던 NC 다이노스 외국인 우완 에릭 해커(30)의 환골탈태투 이유는 무엇일까.
에릭은 10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로 등판해 6⅔이닝 동안 108개의 공을 던지며 단 1피안타(탈삼진 2개, 사사구 4개) 무실점으로 호투한 뒤 3-0으로 앞선 7회말 2사 1,2루서 좌완 문현정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러나 문현정이 오재원에게 2타점 우중간 2루타를 내주며 승계 주자 실점을 떠안았다. 뒤를 이은 이성민이 동점까지 허용하며 에릭의 승리 요건은 날아갔고 결국 팀은 3-4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팀의 외국인 선발 투수가 경기를 잘 만들어갔다는 점은 분명 높이 살 만 했다. 그것도 세 명의 외국인 투수 중 가장 실적이 떨어지던 에릭의 호투는 김경문 감독의 마음도 돌려놓았다. 지난 4월 25일 에릭을 1군 엔트리에서 말소하며 “자신의 단점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어렵다”라며 엄포를 놓았던 김경문 감독은 10일 경기 후 “승리를 지켜주지 못해 안타깝다”라고 에릭의 호투를 높이 샀다.

그렇다면 에릭은 이전에 비해 무엇이 바뀌었을까. 주자가 없을 때의 투구폼과 셋 포지션 시 슬라이드 스텝의 속도. 그리고 투구 패턴의 변화다. 기본적으로 투구 시 찰나의 멈춤 동작을 주며 타자의 히팅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던 에릭이지만 2주 만의 1군 복귀 후 그의 투구폼은 달라져있었다.
이전 에릭의 투구폼은 무릎을 올렸다 내리며 잠시 멈추는 동작이 한 번 있었다. 지난 4월 10일 잠실 LG전에서 보크를 지적받기도 했던 동작. 그러나 지금은 멈추는 동작이 한 번 더 늘었다. 무릎이 최상위로 갔을 때 멈추는 시간이 좀 더 늘었고 내려가면서 한 번 더 멈춘다. 멈춘 후 다시 올리는 동작이 없기 때문에 이중동작으로 판정되지 않는데 엄밀히 따지면 주자 없을 때 투구폼 시간은 좀 더 길어졌다.
분절 동작이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난 만큼 타자들이 타이밍을 잡기 쉽지 않았다. 경기 중 김진욱 두산 감독이 에릭에 대해 잠시 항의를 하기도 했는데 이는 투구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자 챙을 습관적으로 만진 뒤 바로 공을 잡는 모습을 지적하며 스핏볼 투구 가능성을 언급했을 뿐이다. 멈춤 동작을 하나 더 늘리면서 에릭은 보다 효과적으로 두산 타자들을 어렵게 했다.
두 번째는 주자 출루 후 슬라이드 스텝 시간의 단축이다. 에릭의 1군 말소 이전 양상문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에릭의 슬라이드 스텝 시간이 1.5초대 정도로 느리다. 이 정도 시간이면 조인성(SK)의 전성 시절 정도 되어야 주자의 도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돌아온 에릭의 슬라이드 스텝 시간은 1.1~1.3초대로 대단히 빨라졌다.
1.1초대는 국내 리그 투수 중 가장 빠른 축에 속한다. 앤서니 르루(KIA)와 홍상삼(두산)이 좋은 컨디션일때 이 정도 시간대로 슬라이드 스텝을 끊는다. 에릭은 경기 후 빨라진 슬라이드 스텝에 대해 “원래 미네소타 시절까지 이렇게 던졌다. 슬라이드 스텝이 느려진 것은 지난해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하며 코칭스태프의 조언으로 투구폼을 바꾼 후다”라며 변신이 아닌 회귀임을 밝혔다.
세 번째는 직구 변종 구종인 투심 비율을 높이고 이 움직임까지 확실히 살아났다는 점. 양 위원은 에릭의 슬럼프 시기 투구를 보며 “떨어지는 공의 비율이 낮고 안 좋을 때는 공의 움직임이 너무 정직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10일 두산전에서는 108개의 공 중 투심이 43개로 전체 구종 중 가장 비율이 높았다. 평균 142km 가량에 스트라이크 28개-볼 15개로 제구도 좋았다.
타 팀 전력분석원은 에릭의 5회까지 투구에 대해 “포심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정직하게 들어가는 공이 없고 대다수가 역회전으로 꺾여 떨어지는 투심이었다”라며 투심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던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5회 이후 에릭은 패턴을 영리하게 바꿔 최고 147km에 이르는 포심 패스트볼을 앞세워 던졌다. 초반 공의 무브먼트가 좋았던 만큼 두산 타자들의 노림수를 벗어난 뒤 투심이 익을 때쯤 포심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던져 허를 찔렀다.
‘바뀌지 않으면 다음 기회를 보장할 수 없다’라던 감독의 엄포와 2군행. 바뀌지 못하고 이전 모습을 답습했다면 에릭의 고용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에릭은 이전과는 다른 뛰어난 호투를 선보이며 6회까지 노히트 행진을 펼치는 등 한국 무대 입성 이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뀌어야 산다는 교훈을 알려준 에릭의 10일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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