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의 유희관(27)이 깜짝 선발은 물론 불펜 투수로도 연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좌완투수의 잇점을 안고 있는 유희관은 공 빠르기가 최고 135km에 불과하지만 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다. 강속구 투구가 선호되는 프로야구시장에서 유희관이라는 투수가 호투하는 모습은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유희관의 장점은 바로 제구력이다. 다양한 변화구를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투수다. 유희관이 구속을 빠르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구속은 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장점에 집중하게 됐다.

지난 2009년에 데뷔한 유희관이 자신을 장점을 믿고 던지는 법을 터득하게 되자 드디어 그의 매력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도 믿게끔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강속구 투수가 아닌 그의 활약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의문이 남는다. 지금은 그의 모습이 신선하지만, 결국 그의 공이 타자들의 눈에 익숙하게 되면, 느린공을 던지는 선수의 공은 프로선수들이라면 언젠가는 쉽게 쳐낼 수 있게 될 거라는 것이다.
유희관처럼 느린공을 던지는 선수의 생명력은 프로야구에서 어느 정도 통할까.
유희관은 1986년부터 2008년 은퇴할 때까지 18번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고,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에서 4년 연속(1992~1995) 사이영상을 수상한 최초의 선수인 그래그 매덕스(47)를 떠올리게 한다.
느린 공 투수인 매덕스는 움직임(movement)과 제구(location)가 제일 중요하다고 믿었고, 그 믿음 덕분에 그에게는 선발, 완투, 완봉까지 어떤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1992년에 피츠버그에 입단하고 1995년에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한 뒤 작년에 은퇴할 때까지 19년 동안 한 시대를 풍미했던 너클볼의 마술사 팀 웨이크필드(44)는 70마일(약112km)짜리 너클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느린 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대 레드삭스 투수들 중 선발 등판 회수와 투구이닝 기록에서 1위에 올라있다.
항상 웃는 얼굴에 평소 유쾌함이 가득한 유희관은 마운드에서는 135km의 공을 마치 150km를 던지는 것처럼 자신감 있게 정확한 곳에 진지하게 던진다.
빠른 공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시각에서 자신의 공의 장점을 믿고 던질 수 있는 유희관은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참으로 영리한 투수이다. 135Km면 충분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공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역시 유연한, 그래서 영리한 투수가 오래 살아남는다.
/고려대학생상담센터 상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