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극 복귀론 3년만인데 사실 부담이 컸죠. 그런데 예상 보다 훨씬 더 좋게 평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배우 전태수는 안 좋은 일로 한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감췄다가 오랜만에 작품으로 컴백해 좋은 반응까지 얻게 된 지금의 상황에 자못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전태수가 돌아왔다. JTBC 주말드라마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극본 정하연, 연출 노종찬)에서 욕망으로 가득한 소용 조씨(김현주 분)의 숨겨진 정인(情人)이자, 함께 비밀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사대부가 자손 남혁 역이 그의 몫. 신분상승을 위해 계획적으로 접근한 정인으로부터 이용당하고 결국 그녀에게 배신당해 죽음을 맞기도 했지만, 최근 부활해 깜짝 반전을 선사하며 극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죽었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어떤 모습으로 등장해야 할지 고민이 컸어요. 초반에 보인 사대부가 자손의 단정한 모습이어야 할까, 아니면 죽음을 이기고 돌아온 만큼 거칠고 고생스러운 모습이어야 할까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했죠. 결국 후자를 선택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만족스럽게 돌아와서 기쁩니다. 다른 사람이 와서 연기를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정말 짜릿했어요.”
깜짝 반전에 성공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남혁이라는 인물이 지닌 사연이 워낙 극적이기에 접근이 쉽지만은 않았다. 말로서 표현하기 보다는 속 안에 담아두고 대신 이를 눈빛으로 표현하는 게 전태수에게 주어진 미션. 정인과 사랑하고 배신당한 폭풍 같은 사연을 그는 오롯이 감정 연기로 드러내야 했다.
“남혁은 말이 많지 않고, 또 무언가 특정하게 드러난 인물도 아니라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우수에 차 있거나 그리워한다거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눈빛으로 모두 다르게 표현해야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촬영장에서는 감독님의 ‘액션’ 소리를 듣기 전까지 대본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편이에요.”
이 같은 고민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 김현주의 도움으로 무게감이 덜어지기도 한다. “촬영장에서 이렇게까지 상대 배우와 연기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전태수의 말.
“촬영장 분위기가 매우 좋은 편이에요. 극 내용은 진지하고 치명적인데 컷 소리가 나면 다들 화기애애하게 돌변하죠. 이덕화, 정성모 선배님 등 출연 배우들이 워낙 베테랑이니까 가능한 일이죠. 웃고 떠들다가도 그 속엔 다 캐릭터의 감정선을 유지하고 계시니까요. 김현주 누나는 특히 저를 많이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편이세요. ‘이 신에서는 이렇게 갔으면 좋겠는데 너는 어떠니’ 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좋은 장면이 나오는 것 같아요.”

남혁은 지난 12회를 기점으로 부활과 함께 극에 재등장하며 이전과는 새로운 모습으로 ‘꽃들의 전쟁’에 또 다른 긴장감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정하연 작가는 남혁 캐릭터에 공을 들이기 위해 수정을 거듭하며 이전에 설정된 이야기에 변화를 주는 상황으로, 이를 통해 전태수의 어깨도 무거워지게 됐다.
“앞으로 남혁이 어떤 운명을 걷게 될지 모르겠지만, 죽음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만큼 연기 스타일에 있어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얌전이(김현주 분)에게 죽음을 사주당한 사실을 알게 된 만큼 애증의 관계로 돌아선 건데, 죽이고 싶지만 사랑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안고 가는 거죠. 남혁은 아마도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삶에 있어 여한이 없는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경험은 극중 남혁 외에 어쩌면 전태수 자신 역시 겪고 있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지난 2011년 음주폭행으로 불구속 입건돼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가 이번 ‘꽃들의 전쟁’으로 3년 만에 복귀, 연기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전태수 개인의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 고난의 시간이었음은 묻지 않아도 인지상정인 가운데 그는 이 같은 경험이 오히려 인생에서 큰 약이 됐다고 고백했다.
“큰 전환점이었죠.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 시간이었어요. 여행 다니고 책 많이 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언제 꼭 복귀해야지' 하는 그런 생각들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힘든 시간 동안 곁을 지켜준 지인들을 통해 새삼 내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은 쓴 약이 준 또 다른 교훈이다.
“가족들이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됐어요.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니까요. 또 매니저들 역시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죠. 저 하나가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 같이 힘들어했고, 그러면서 모두에게 터닝포인트가 된 게 아닐까 싶어요.”
3년의 시간 동안 내적인 토양을 다진 만큼 이제 집중하고 싶은 건 앞으로의 삶이다.
“자연인 전태수도 그렇고, 연기하는 배우 전태수도 그렇고 이제 막 마라톤의 출발선에 선 기분이에요. 잘 뛸 자신이요? 아니요, 저 솔직히 없어요. 다만 완주할 자신은 있어요. 다시 시작했는데 마지막까지 뛰어는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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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