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추락하는 예능에는 다 이유가 있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5.13 08: 13

[유진모의 테마토크]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는 국내 개그 프로그램의 혁명이었다.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인 형식으로 제작, 진행됐다면 '개콘'은 제목대로 콘서트 형식으로 제작돼 방청객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공개방송으로 신선도를 살렸다.
그 결과 무려 14년간의 장수프로그램으로 우뚝 섰다. 예전과 달리 요즘 개그맨들의 인기 사이클은 매우 짧다. '개콘'이 인기 코너로 인기 개그맨을 만들어내면 그 개그맨의 인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콘'은 새로운 스타의 신선한 코너들을 쉼 없이 내놓으며 길고 굵은 생명력을 이어갔다. 일요일밤의 시청률은 '개콘'의 독보적인 질주였다.
'개콘'은 개그계에 여러가지 혁명을 일으켰다. 우선 공개 개그 프로그램으로 지상파 방송 3사의 제작방식을 바꿨다. '개콘'의 위력 앞에 무너진 SBS는 '웃찾사'를, MBC는 '코미디에 빠지다'를 각각 내며 자존심에 상관 없이 '개콘'을 흉내냈다. 그 뿐만 아니라 케이블TV tvN까지 '코미디 빅리그'라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내놨다.

더불어 '개콘'은 개그맨의 위상을 높였다. 그동안 연예인의 위상은 가수와 배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정상을 지켰다. 최고 인기 배우나 가수에 비해 최정상의 개그맨이 CF에서 받는 개런티나 출연 편수는 현저하게 적은 게 단적인 증거다. 대중도 가수나 배우에 비해 개그맨을 그다지 무겁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달라졌다. 강호동과 유재석 등 개그맨 출신 MC들과 쌍끌이로 '개콘'의 인기 개그맨들이 개그맨들의 위상을 격상시켰다. '개콘' 출신 인기 개그맨들이 CF를 종횡무진 누비는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장동건의 드라마 복귀작 '신사의 품격'이 방송되면서부터 '개콘'에게 위기가 닥쳤다. '개콘'의 난공불락의 1위 시청률은 '신사의 품격'에 의해 오르락내리락했으며 올들어 드디어 20%대에서 떨어져 10%대를 헤매고 있다. 당연히 동시간대 시청률 1위는 내준지 오래. MBC '백년의 유산'이 20% 중반을 내달리는데 반해 '개콘'은 10%대 중반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제 노쇠해진 걸까? '약발'이 떨어진 '개콘'의 활기는 예전만 못하다. 제작진이나 출연진도 그것을 충분히 의식한 듯 최근 들어 새 코너를 줄기차게 등장시키며 변화와 개혁에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시청자의 반응은 그들의 용틀임과는 사뭇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 코너는 이제 식상할대로 식상해 이제는 눈과 귀에 익을대로 익은 형식과 대사 속에서 그때 그때의 대사만이 얄팍한 웃음을 줄 뿐이다. 게다가 새로운 코너는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코너들이 처음 등장할 때 만큼의 폭발력이 떨어진다.
이제 '불편한 진실' '거지의 품격' '정여사' '네가지'는 소재 고갈과 고정화된 패턴으로 마치 장거리 레이스에서 지친 노인네처럼 매가리가 없다.
'생활의 발견'은 이미 오래 전 홍보의 장이 돼버려 더 이상 재미를 기대하기 힘들다.
새롭게 등장한 '현대 레알 사전' '나는 아빠다'는 예전에 이미 보여준 코너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고, '애니뭘' '버티고' 등은 새롭게 론칭한지 얼마 안 됐지만 벌써 식상하다. 특히 '버티고'는 이제 더이상 보여줄 게 없는 듯 지나치게 획일화돼있어 보는 사람이 더 지친다. 허안나가 김장군 류정남 김지호 김준호 등의 뺨을 때려 웃기려드는 구시대적 몸개그는 한 번 이상은 재미 없다.
'거제도'는 바보 흉내를 내는 정태호 신보라의 연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허무하다. 이런 낡은 개그로 요즘 자극에 둔감해진 시청자를 웃기려든다면 그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슬픔 속에 웃음을 주는 신선한 발상으로 눈길을 끈 '나쁜 사람'은 이제 아이디어가 고갈돼 그 한계에 부닥쳤다.
그나마 메시지가 있는 '시청률의 제왕'이 박성광의 연기력 등에 힘입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 하나만으로 10여개의 코너로 구성된 '개콘' 전체의 생명력을 부활시키는 것은 역부족이다.
왜 '개콘'은 그 화려했던 10여년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점점 빛이 바래는 걸까?
'개콘'의 가장 큰 강점은 가벼운 웃음이 아닌, 메시지와 반전이 있는 임팩트 있는 웃음을 준다는 점과 시청자들이 식상해하기 전에 출연자와 코너를 재빨리 교체하는 자연스러운 혈액순환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개콘'은 '용감한 녀석들'의 정치인 거론 혹은 정치풍자 따윈 잊은 지 오래고, 인기있는 개그맨들은 시뮬라크라에 안주할 뿐 새로운 캐릭터 개발에 인색해 시청자를 지루하게 만들 뿐 동맥경화라는 고질병에 걸려있다.
최근 들어 새 코너를 자주 내는 '개콘'은 지난 12일에도 '오성과 한음' '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 등 두 코너를 신설했지만 2013년판 허무개그로 평가받는 '오성과 한음'은 '개콘'이 아닌 '웃찾사'같은 느낌만 줄 뿐 '개콘' 특유의 활력이나 반전이 부족했고 다만 '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가 신선한 발상으로 향후 가능성을 내비쳤을 뿐이다.
'개콘'은 살벌한 적사생존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못하면 바로 밥을 굶어야 할 정도로 냉정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약육강식의 밀림 같은 대결을 펼치는 게 '개콘'의 내부속사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출연자들은 반짝반짝 빛나고 재치있는 아이디어와 촌철살인의 대사로 시청자의 배꼽을 자극하고자 눈에 불을 켰고 두뇌를 최대한 가동했다. 특히 '개콘'은 정치와 시사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를 풍자하며 든든한 무게감마저 줬었다.
하지만 현재의 '개콘'은 그런 미덕과 강점이 전혀 빛나지 않는다. 출연자들은 편안함에 안주했는지 아니면 아이디어가 바닥이 났는지 생기 잃은 소재로 일관하고 있으며 제작진의 예전의 스파르타식 조련방식도 많이 완화된 듯 보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경쟁작으로 나서겠다며 안간힘을 쓰는 '웃찾사'와 '코미디에 빠지다'가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기에 '개콘'의 무기력증이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답보상태를 거듭하거나 혹은 점점 퇴보한다면 결국 '개콘'이라는 브랜드네임도 장수를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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